원진 作

제2부 한 여인의 인생을 참담히 짓밟은 짐승들(17)

“아버님! 아버님! 어찌하여 우리 집안에 이런 풍파가 몰아칩니까? 아버님 제발이지 저 불쌍한 년, 숙희 저 년을 어서 좀 데려가 주소서. 네? 으흐흑” 겉잡을 수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몸을 지탱하기도 힘이 들었다.

시어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시아버지는 숙희가 열 살 때 돌아가신 인자하고 정이 많은 어른이었다. 무남독녀 손녀딸 숙희를 그렇게도 사랑하였던 그런 시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웃다가 울다가 그만 지쳐서 그녀는 산소 앞 잔디밭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허연 수염이 한자도 넘는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먼 산울림 같은 목소리로,

“내 말 잘 들어라…… 불쌍한 네 딸이 원한에 사무쳐 있어. 하도 가여워 산신령님께서 네 딸에게 두 아이를 점지하셨느니라. 그 아이들이 자라면 지 애미의 원한을 꼭 풀어줄 것이다. 그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이 아니란다. 잘 키워라. 그 아이들이 태어나는 날, 진통 때 네 딸은 정신이 되돌아올 것이니라” 하면서 노인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이상한 꿈이었다.

송산 댁이 시아버지 산소 앞에 잠깐 쓰러져 잠이 든 그 사이에 꿈에 나타난 그 백발수염 노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 다음 다음날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오토바이를 탄 우편 집배원이 숙희네로 와서 도장을 좀 달라며 등기 편지 한 통을 전해주고 갔다.《서울에서 배지숙 올림》으로 되어 있었다.

송산댁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편지 봉투를 열고 하얀 백지위에 깨알처럼 담겨있는 글을 읽기 시작했다.

숙희 어머님께 올립니다.
숙희 어머님! 편지 드리기조차 죄송스럽군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는 숙희의 담임교사였던 배지숙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때 숙희를 시내 서점에 책 심부름을 보냈다가 그만 귀가 시간이 늦어져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하게 한 책임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으며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책감으로 도저히 교단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입산수도를 하다가 지금은 친정인 서울에 와서 이 글을 올립니다. 그 때의 일, 다시 한 번 용서를 빌면서 제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일을 이 편지로 말씀 드리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원래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으며 그 곳에서는 꽤나 알려진 부잣집 무남독녀로 자랐습니다. 교육대학을 나와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부임지가 그 여자 중학교였습니다.

저는 숙희가 참변을 당한 그 무렵 임신 중이었습니다. 그날도 몸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서점에 직접 가지 못하고 숙희를 심부름 보낸 것이 그만 그런 끔찍한 사건으로 연결이 되게 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몸이 좀 피곤하더라도 제가 갔었더라면 숙희는 친구들과 함께 귀가를 할 수 있었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터인데….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겨질 것 같은 후회가 저를 한없이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때의 충격으로 애기를 유산하였으며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남편과 이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순간의 안전 불감증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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