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규 환경부 장관

제2, 제3의 디디티(DDT) 재현을 막아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5월 22일 제정·공포됐다.

이 법은 ‘노 데이터, 노 마켓(No Data, No Market·위해성 자료 등록 없이 판매 불가)’ 원칙을 구현한 유럽연합(EU)의 신(新)화학물질관리 제도(REACH)에 대한 한국판 법률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DDT는 1939년 뛰어난 살충효과가 발견된 이후 살충제로 상용화돼 각광받았으나 그 폐해가 드러나면서 1972년 미국에 이어 1979년 한국에서도 사용이 금지됐다.

DDT와 같은 운명의 화학물질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냉매 프레온 가스, 변압기 절연제 피시비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고를 야기시킨 물질도 이와 같은 부류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왜 제2, 제3의 DDT 드라마가 근절되지 못하는 것일까.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 4만4,000여종 가운데 85% 이상이 유해성 정보 없이 유통되고 있다. 나머지 15% 역시 제한적인 유해성 정보만 파악돼 있다. 즉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규명하지 못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세계적으로 연간 500여만종의 화학물질이 새로 합성되고 이중 2,000여종이 상품화되지만 제한적으로라도 유해성이 확인된 것은 많아야 400여종, 위해성 평가가 된 것은 고작 30여 종으로 추산된다. 유해성과 위해성(유해성×노출정도) 평가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불필요한 과정으로 인식돼 왔던 것이 원인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쥐나 토끼 등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시험한 후 인체 영향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엄존한다.

이러한 어려움과 기득권 때문에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유해성과 위해성 평가를 의무화하지 않았던 것이 세계적인 대세였다. 여기에 마침표를 찍은 제도가 EU의 REACH이고 이를 국내 법제화한 것이 ‘화평법’이다.

이 법률이 오는 2015년 시행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같은 악몽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익히 알고 있듯이 이 사건은 카펫 살균용으로 수입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의 화학물질을 안전성 확인 없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해 사람이 흡입하게 됨으로써 발생했다. 가습기 살균제도 ‘용도’에 대해 등록하는 제도가 있었다면 흡입 시 위험성을 파악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불행한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일정 요건에 해당되면 유통 중인 기존 화학물질까지도 화평법에 따라 등록하고 용도와 노출정도를 고려해 위해성을 평가받은 후 사용해야 한다. 특히 세정제·방향제 등 생활용 제품과 방충제, 소독제를 포함한 살생물제(Biocide) 같은 화학제품까지 위해성을 평가해 안전기준, 표시기준을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

예방적으로 화학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법제가 마련된 것이다. 이로써 화학물질 제조자·수입자와 제품 생산자 모두가 그 안전성을 확인하고 공유함으로써 국민 건강과 환경 보호에 더욱 이바지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10년에 제정 작업이 시작됐던 화평법은 모두의 관심 덕분에 오랜 산통 끝에 제정됐다. 하지만 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각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환경부는 그간의 소통과정에서 형성된 공감대를 계속 이어가 하위 법령을 제정하고, 국민 모두의 건강과 환경을 지키는 것은 물론, 한국 화학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할 것이다.

화평법이 화학 사고에 놀란 국민의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주고 화학산업계의 대외 경쟁력을 확고히 하는 발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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