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예방과장 | 서울강동소방서

지하탱크와 맨홀에서 맨몸으로 작업을 하다가 가스에 질식되는 사고가 많다. 또 맨홀 속에서 쓰러진 사람을 구하러 내려갔다가 함께 변을 당하는 사고도 상당하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매년 반복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되풀이 되는 죽음을 보고 있으면, 생명을 구하기 위한 다짐 속에 안전이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모두가 애석한 사고지만, 필자의 기억에 유독 생생한 사고가 몇 가지 있다. 약 2년 전이다. 용산구 남영동에서 상수도관로 위치를 탐사하다가 3m 깊이 맨홀 안에서 3명이 질식하는 사고가 있었다. 먼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근로자가 2분 만에 쓰러지자, 다른 2명이 구하러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또 올해 1월 24일에는 제주시 감귤가공 공장에서 청소 용역업체 직원 3명이 감귤처리탱크 내부에서 작업을 하다가 잔류가스로 인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경위는 이랬다.
한 근로자가 7미터 깊이의 저장창고 밑에서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감귤 껍질이 자연발화되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또 다른 근로자가 서둘러 그를 구하기 위해 밑으로 내려갔으나 함께 변을 당하고 말았다. 작업장 내에는 환기구가 1개뿐이었고, 사고자들은 안전모와 마스크 등을 착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발생하는 지역과 장소만 다를 뿐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부분 산소와 일산화탄소 농도측정을 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안전작업수칙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 속에는 상수도, 하수도, 도시가스, 통신 케이블, 정화조 같은 매설물이 있다. 재해를 당한 동료 작업자를 구조하기 위해 안전장비도 없이 구조작업에 나서는 행위는 죽음을 부른다.

그럼 맨홀질식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작업 전 관리감독자가 근로자를 대상으로 질식재해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작업장으로 출입하기 전에는 항시 산소와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고, 작업 중에도 수시로 환기를 실시해야 한다. 더불어 출입 시에는 공기호흡기와 같은 보호 장구를 착용토록 해야 한다.

재해자를 구조할 때는 꼭 안전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장비가 없을 경우에는 상황이 위급해도 성급히 나서지 말고 구조대원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작업장마다 안전규칙이 있는데, 사고가 반복되는 걸 보면 과연 우리 산업현장에 안전의식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날마다 산업현장에선 하루 평균 6명이 목숨을 잃고 290여명이 부상을 당한다.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아직도 우리의 의식은 전형적인 후진국 형이다. 언제쯤 의식의 선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제 곧 밀폐장소에서의 질식재해가 다발하는 여름철이 다가 온다. 또 다시 같은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산업현장의 모두가 깊은 반성과 함께 마음 속 깊이 안전을 되새겨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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