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예방과장 | 서울강동소방서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서울 한복판을 뒤덮었다. 화재 현장에는 16개 공사업체에 소속된 수많은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에는 화마(火魔)가 집어삼킨 동생을 애타게 부르는 형이 있었다.

“나는 동생과 함께 지하 2층에서 단열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불이 나자 갑자기 동생이 장비를 다 버리고 도망치라고 소리를 쳤는데, 뒤돌아보는 순간 시커먼 연기와 불이 달려들었습니다. 모두 방독면을 쓰고 있었지만 시야가 좁아 출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동생과 나는 출구 쪽으로 뛰어 나오다가 중앙통로 분리대 앞에서 헤어지게 됐습니다. ‘억’ 하는 동생의 비명을 듣고 이내 큰 소리로 동생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찾아 화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유독가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검은 연기 속에서 동생과 이별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불과 몇 미터 안의 지척거리에 있는 동생을 두고 구하러 가지 못한 형, 그의 통곡소리는 불길보다 사납게 하늘로 치솟았다.

2012년 8월 13일 발생한 국립현대미술관 공사현장 화재사고 때의 일이다. 이 사고로 안타깝게도 4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

허술한 안전관리가 사고를 불러온다는 말은 이 사고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국과수의 감식결과에 따르면 이 사고는 지하 3층 기계실에서 전선 피복 손상으로 합선이 일어나 화재가 발생했고 곧이어 우레탄폼이 뿌려진 천장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큰 피해가 난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관계자들이 환기장치 설치, 용접 작업 시 화기 관리 등의 소방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인재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이유로 발생하는 사고가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최근 3년 간 서울시 공사현장에 발생한 화재는 총 379건에 달한다. 특히 이 가운데 80%는 부주의에 의한 화재로 조사된 바 있다. 용접 작업 중 불씨가 튀거나 전기합선, 근로자들의 담뱃불 등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서울소방본부에서는 현대미술관 화재사고를 계기로 공사 단계부터 소방 관련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건의했다. 그리고 서울시 전역 3,460개소 공사현장 관계자와 간담회를 갖고 가연성 물질을 다룰 때 지켜야할 안전수칙을 준수할 것은 당부하기도 했다.

이처럼 부주의에 의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도 현장에는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경제적인 이유로 대형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건축자재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레탄이다. 우레탄은 단열과 방음이 뛰어난 것은 물론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건축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레탄은 용접 불티나 전기 스파크에 의해 쉽게 연소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우레탄이 타면 염화수소, 시안화수소 등이 발생하는데, 이 가스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에 사용한 독가스 중 하나다. 이들 유독가스는 단 두 세 번만 호흡해도 질식할 수 있어서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8년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2007년 10명의 생명을 뺏어간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모두 우레탄으로 인한 유독가스 때문에 대형 인명피해가 났다.

물론 불에 잘 타지 않는 방화 우레탄도 개발돼 있다. 가스토치로 불을 붙여도 잘 타지 않고, 연기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수입산인데다 일반 우레탄에 비해서 3~4배 이상 가격이 비싸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은 우레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미국과 유럽에선 우레탄을 단열재로 쓸 때에는 유해가스 안전검사를 반드시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1층짜리 건물에 한해서만 사용을 허가하고, 2층 이상 건물에는 우레탄을 절대 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소한 지하층과 고층건물만이라도 우레탄 사용을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명은 가장 소중하게 다뤄야할 안전수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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