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 소방방재청장

톨스토이 소설 ‘크로이체르 소나타’에는 질투와 증오에 불타올라 아내를 죽인 주인공이 격정을 가누질 못할 때마다 종이에 불을 붙여 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원한·분노·증오를 가눌 수 없을 때 연쇄 방화(放火)는 시작된다. 지난 2월 15일 온두라스 코마야과 교도소에서 재소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350여명이 숨졌다.

그전 2월 10일 울산 한 아파트에서는 학교폭력에 시달려 우울증을 앓던 고등학생이 연쇄 방화를 저지른 일도 있었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에서 주택 화재로 일가족 5명이 숨진 사건도 빚에 시달리던 가장이 방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년 전 숭례문 방화사건은 더 비극적인 사례다.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을 품은 노인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불에 국보 1호가 다 타버렸다.

방화범죄란 고의로 화재를 일으켜 공중의 생명이나 신체·재산 등에 위험을 초래하는 범죄를 말한다. 살인·강도·강간과 함께 4대 강력 범죄에 속한다. 방화는 범죄를 은폐하거나 보복을 목적으로 한 계획적 방화와 현실불만, 가정불화, 호기심 충족에 의한 우발적 방화, 방화광(pyromaniac), 정신장애 등에 의한 습관적 방화로 분류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는 보험금을 노리거나 범죄를 위한 3자에 의한 방화가 다수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불만 해소, 가정불화, 정신이상 등이 주된 요인이었다.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소외, 가정불화로 인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인을 노리고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 불을 지르는 ‘묻지마’ 방화가 잊을만하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방화는 전체 화재 43,875건 중 5.1%인 2,252건이 발생했다. 화재 사망자 263명 중 30%인 79명이 방화로 숨져 인명 피해 비율이 높다. 방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시급한 이유다.

최근 증가하는 화풀이형 방화는 양극화되는 사회 환경과 가치관의 붕괴에서 비롯된다.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 환경 개선과 올바른 가치관 정립이 그래서 가장 좋은 방화대책이다.

또 방화가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소방안전교육을 하고, 어린이 방화예방 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도 신경써야 한다.

이들을 소홀히 한다면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처럼 사회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누구도 방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방화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특성상 소방관과 함께 일반 시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