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안전보건관리(경영)시스템이 요구사항(requirement) 준수보다는 인증을 중심으로 구축·운영되고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안전보건관리시스템에 해당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강제하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인증기관에 의한 인증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문제는 인증기관과 심사원(컨설턴트)이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운영에 대한 전문성과 진정성이 태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ISO 45001 인증기관 심사원은 대부분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경험과 이론적 지식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KOSHA-MS 심사원(컨설턴트)은 ISO 45001의 그것보다는 낫지만 이들 또한 단지 며칠간의 교육을 받고 간단한 시험만 보면 자격취득을 할 수 있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내용(요구사항)을 제대로 학습한 적이 없어 그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ISO 45001 인증기관이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메스를 가해야 한다. 이 문제가 오래전부터 지속돼 온 문제이고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을 기회로 더 확산되고 있는 상태라는 점을 정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처럼 문란한 안전보건시스템 인증시장을 정비하겠다는 비전과 전략을 제시한 적이 없다.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내실화보다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기업에 강제하여 처벌하는 것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이 산업안전보건의 실질적인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서류작성만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산업현장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산업안전보건 컨설팅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재처럼 운영된다면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인증은 없느니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다.

ISO 45001 인증기관에 전문성과 진정성이 없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구축할 능력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업체, 특히 중소기업에 대해 인증을 맹목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사고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선생님이 초등학생에게 대학생이나 풀 수 있는 미적분 과제를 맡긴 것으로도 비유할 수 있다. 초등학생은 어떻게든 그 문제를 풀어 제출하겠지만 답을 베끼는 방식으로 문제풀이를 할 것이다. 초등학생의 학습역량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훤하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에 미치는 폐해마저 적지 않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의 경우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인증을 받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형편과 준비상태에 따라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요구사항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인증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안전보건관리시스템에 요구되는 문서와 실제 간의 괴리를 심화시키는 일이다. 게다가 인증 받은 업체 종업원의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냉소적 반응을 조장하기까지 한다.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인증기관은 인증을 받기만 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허황되거나 과장된 홍보까지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한껏 고조된 기업들의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공포감을 이용하여 기업의 산업안전보건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나아가 기업의 안전보건역량을 올릴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인증 장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인증기관의 대대적인 반성과 혁신이 필요한 대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계기로 전문성이 의심되는 산업안전보건 컨설팅기관이나 컨설턴트들이 무분별하게 생겨나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인증시장부터 정화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인증기관을 관리하는 인정기관도 아니고 안전보건공단도 아니다. 이들은 권한도 없지만 이해관계 때문에도 기대난망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의 존재이유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실기(失期)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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