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산업안전 선진국 도약을 목표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본격 시행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의 염원과 달리 우리 일터 안전에 눈에 띄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정부의 갖은 노력으로 산업현장에서의 사고사망자 수는 소폭 줄었지만, 국민의 눈높이나 기대치 만큼의 성과는 보이지 않으면서 일각에서는 중처법의 실효성에 대해 ‘물음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일터 안전을 획기적으로 탈바꿈 시키기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산업현장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2026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을 선진국 수준인 0.29‱까지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 가운데, 이른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의 핵심수단으로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를 제시하며, 이 제도의 현장 정착·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산업안전보건 강조의 달(7월)을 기념해,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 선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의 류경희 본부장을 만나, 로드맵에 담긴 함의와 현 정부의 안전정책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Q. 그간의 소회에 대해 밝혀 주신다면?
지난해 8월 현 정부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초대 본부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에 가까운 시간, 한시도 마음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중대재해 감축은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데다, 정부의 조직 슬림화 기조에도 불구하고 본부의 규모는 확대된 만큼, 여느 때보다 막중한 책임감과 집중력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저는 공직에 입문해 97년에 지방청에서 안전과장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와 비교해 사고사망만인율이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것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해야하는 등 일터 안전이 제자리 걸음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눈부신 경제적 성장과 발전을 이룬 우리나라의 국격을 생각할 때 일터 안전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판단했고, 지난 11월 30일 관계부처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안전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할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세상에 내놓게 됐습니다.

Q. 로드맵에 담긴 함의(含意)는 무엇인가?
로드맵은 책임성, 현장성, 혁신성 등 세 가지 핵심 원칙을 기반으로 합니다. 안전은 모두의 책임이고, 현장 중심의 실천이 이뤄져야 하며, 과거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로드맵에는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중소기업 및 고위험사업장 등 중대재해 취약분야 집중 지원·관리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 및 문화 확산 ▲산업안전 거버넌스 재정비 등 크게 4대 전략과 14개 핵심과제가 담겨 있습니다.

중처법 시행과 관련해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났지만, 일부 부작용도 나타난 것이 사실입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기 위해 제정된 법임에도, 일부 기업에서는 대형 로펌 자문 등을 통한 처벌 회피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고, 형식적 의무 이행과 중대재해 예방과 관계없는 광범위한 서류작업에 치중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고 기업 노사가 스스로 일터의 전반적인 위험요인을 발굴·개선하는 환경과 분위기를 구축하고자 꺼내든 정책적 솔루션이 바로 로드맵입니다. 로드맵은 처벌 위주 규제에서 탈피해 ‘자기규율’ 방식으로 산업현장 안전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앞서 산재 사고사망 정체기를 경험한 국가 등의 사례를 참조한 것으로, 실제 영국의 경우에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에 노력한 결과 사고사망만인율을 획기적으로 감축한 바 있습니다. 로드맵에 담긴 이러한 함의가 하루아침에 실현되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일터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끈질기게 노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Q. 새로운 위험성평가의 개정 배경과 감독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위험성평가 제도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의 핵심수단입니다. 고용부의 감독방향도 이 제도의 정착·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간 위험성평가는 우수한 제도임에도 일선 현장에서 적용해 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위험성의 빈도(가능성)와 강도(중대성)를 계량적으로 계산해 평가토록 함에 따라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조금 시도하다 어렵다며 포기해 버리는 현상도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현장의 고충 등을 반영해 사업장의 부담을 완화시키고, 보다 쉽고 간편하게 위험성평가를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 위험성평가 지침 개정의 배경입니다. 새로운 위험성평가는 정기 및 수시 위험성평가를 갈음할 수 있는 월·주·일 단위의 ‘상시평가 제도’를 신설하고, 일선 현장의 근로자들이 평가의 모든 과정에 참여토록 한 것이 핵심입니다. 또한 평가 방법 등을 쉽고 간편하게 제시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현재 고용부의 정기감독은 ‘위험성평가 특화점검’으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특화점검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사업장의 위반 행위를 따지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컨설팅(초기단계) 방식으로 감독을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즉, 미흡한 부분과 보완 및 개선점을 지도·조언해주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여기에 더해 공단의 점검, 민간재해예방기관의 지도 역시 위험성평가 중심으로 실시토록 하면서, 이 제도의 현장 정착 및 확산을 적극 도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장 중심 위험성평가가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의 시작

Q. 내년 중처법 확대 적용과 관련해 말씀 주신다면
지난해부터 중처법이 본격 시행됐고, 50인(억) 미만 사업장(건설현장)의 경우 내년 1월 27일부터 확대·적용이 예정돼 있습니다. 현재 고용부는 법령 개선 TF를 구성·운영하며, 현장의 의견, 전문가 제언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심층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들 사업장도 내년부터 중처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현재 사고사망자의 약 80%가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소 사업장 문제는 산업안전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선결돼야 할 과제입니다. 앞으로도 본부는 감독관 인력 확충, 효율적 배치, 감독관 역량 강화 등을 통해 실질적 산재예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Q. 중처법 업무 추진에 애로사항이 있다면?
산업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본부 내에서도 다양한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현재 중처법 조사 대상 건수는 한 해 250건 정도인데, 적용 대상이 늘어나면 이의 두 배, 약 500건 이상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중처법이 시행된지 약 1년 5개월 남짓 지났는데, 현재 사건 처리율은 30%가 채 되지 않습니다. 감독관 수도 부족한 데다, 산업안전보건법과는 다르게 경영 전반에 관한 사항, 전문성이 요구되는 법리적 검토 등을 다뤄야 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게 그 이유입니다.

여기에 더해 일선 현장에 투입되는 감독관들의 신체적, 심적 부담도 상당합니다. 최근 신임 감독관이 중대재해 발생 현장을 접하며, 심리적 불안감도 호소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들의 심리 치유를 위한 힐링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Q. 산업현장 구성원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안전은 이제 국가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입니다. 일터 안전을 도외시한 기업 경영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이라는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사업주, 안전보건관계자, 근로자 등 일터를 구성하는 모두가 안전이란 무대 위에 올라서야 합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선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아니라 모두가 주연이 되어 위험성평가에 동참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월 1회 이상 노사 합동 순회점검, 제안제도·아차사고 등을 기반으로 위험성평가(상시)를 실시하고, 발굴된 유해위험요인은 작업전 안전점검회의(TBM)를 통해 공유·전파해 근로자 모두가 그 위험성을 주지하고 개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앞으로 고용부는 벌칙(Penalty) 등을 통해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곳을 명확히 구분할 방침입니다. 여기에 더해 위험성평가 결과 개선사항이 있음에도, 인적·재정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기초 컨설팅, 시설개선 지원, 심층컨설팅 등 ‘안전일터 패키지’와 연계해 전방위적 지원에 나설 것입니다.

산업현장 구성원 모두 일터 안전에 대한 1t(톤)의 생각보다 1g(그램)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위험성평가의 현장 정착에 앞장서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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