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속성 부정하기 어려워”

이미지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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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상품배송 위탁업체와 계약한 배송기사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봐야한다는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박정대)는 지난달 11일 A주식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재심결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사는 한 대형마트와 전자상거래 상품 운송 위·수탁계약을 2년 단위로 체결하고 상품배송업무를 수행할 배송기사를 모집한 뒤 배송 계약을 체결했다.

배송기사 150여 명이 가입된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지난 2020년 8월 5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A사 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A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교섭요구 사실도 공고하지 않았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같은 달 20일 배송기사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A사는 마트산업노조의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고 노조의 공고 시정 요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A사는 지노위의 결정에 불복해 다음 달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중노위도 지노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A사의 재심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A사는 배송기사들이 A사 외에도 다른 업체들과 배송계약을 체결해 수익을 얻고 있었고, 배송권역은 배송기사의 선택에 달려 있는 등 배송기사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이번 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사의 배송기사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마트산업노조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사 소속 배송기사는 계약 체결 과정에서 계약서의 개별 조항을 취사선택하거나 그 내용을 변경할 수 없다”며 “A사가 배송계약의 내용을 일반적으로 정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배송권역에 관해선 “배송기사가 배송계약에서 허용한 범위 내의 재량권을 행사함으로써 배송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실현한 것에 불과하다”며 “배송계약의 내용 자체를 변경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봤다.

또 “배송기사는 대형마트 물류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경유해야 할 운송업체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라며 “이런 제한적인 범위의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사정만으로 배송기사의 종속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나아가 “배송계약에서 ▲월 2회 이상 정규 세차 실시 ▲배송개시 전 차량 내·외부 청소 및 점검 ▲배송차량 냉장 가동 여부 등 A사가 배송기사의 업무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지휘·감독을 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송기사가 근로기준법에 규정한 근로자의 요건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보더라도, 배송기사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까지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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