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안전한 사회’ 실현 위해 각계의 역량을 결집해야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본격 시행되고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안전 분야 거대 담론을 이끌어나갈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중처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가 여전히 빈발함에 따라 실효성 높은 정책적 제언, 학술적·기술적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 유일 산학협동체제의 종합안전 과학기술연구기관인 한국안전학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안전학회는 산업재해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학문적 연구 및 기술발전을 도모하고, 안전한 사회 구축을 목표로 지난 1986년 설립된 국내 안전 분야 최고의 씽크탱크(Think Tank)다.

안전 분야 기초학술 연구를 비롯해, 국가의 안전정책, 안전기준에 관한 연구에 적극 참여하는 가운데, 최신 안전보건 기술과 트렌드를 반영한 연구·개발 활동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본지는 올해 산업안전보건강조주간을 맞이해 19대 한국안전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백종배 신임 회장 (한국교통대학교 교수)을 만나 그가 그리는 학회의 역할과 기능,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백종배 한국안전학회 회장
백종배 한국안전학회 회장

Q. 회장님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35년을 안전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제 인생은 우리나라 안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대학교에서 안전공학으로 학부·석사를 졸업한 뒤, 1988년 3월부터 노동부 산업안전국의 전문위원으로 몸담으며 안전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일터의 안전보건 수준은 참담했습니다. 성장과 발전이란 가치에 매몰돼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리던 시기였습니다. 안전은 중요하지 않고 부차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일터 및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이 어째서 소중하고 중요한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와 논리가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를 체계화시킬 수 있는 학술적, 정책적 제언이 활성화 돼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같은 저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역량이 필요했고, 그 첫 단계로 박사학위(화학공정안전)를 취득하였고, 그 후 KIST 환경연구원에서 중대산업사고(MIA) 분석 업무를 비롯해 美노스텍사스 대학교에서 안전문화 측정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교통대학교 교수(안전공학과)로 재직하며, 사회 초년생 시절 그렸던 우리 사회 안전이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구체화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그 열정을 인정받아 올해 한국안전학회 19대 회장으로 선출됐습니다.

Q. 국내 안전분야 최대 학술단체의 수장으로서, 학회 운영에 있어 어디에 중점을 두고 계신가요?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뜨거운 시기에 회장이란 중책을 맡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 일터에서의 작업환경과 기술의 변화, 안전관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 기업들의 남다른 요구 등 다양한 니즈(Needs) 등을 감안하면 더욱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선 저는 학회 선배님들이 일궈 놓은 고유의 전통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당면 과제 등을 해결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먼저 학회의 내실과 외실 강화에 주력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회원 및 단체회원사 확대를 통해 안전 분야 학술 네트워크의 몸집을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산·관·연·학간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 나갈 방침입니다.

또한 안전 분야 수준 높은 연구 자료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학술 활동에 대한 전방위 지원에 나설 것입니다. 논문 심사 및 편집 위원 풀(Pool)을 강화하고, 학술과 편집 활동의 독립 운영 지원, 안정적 자원 확보 등을 통해 우리 학회지가 SCI 또는 SCOPUS에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연구 및 진단과제 기획 및 지원 플랫폼 구축을 위한 운영 지원 시스템도 구성할 방침입니다. 창의적인 연구 인재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동시에 우수한 연구성과가 정부에 제공되는 선순환적 생태계를 조성해 나갈 계획입니다.

끝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일상회복 단계에 들어선 만큼 안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과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토론의 기능을 강화할 것입니다. 현재 학회 주도의 ‘대한민국 안전리더 포럼(가칭)’ 등 정기 특별세미나를 기획 중이며, 빠른 시일 내 안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속히 마련해 나가겠습니다.

Q. 최근 정부가 현장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떨어짐‧끼임 등 후진국형 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는 주요 원인과 해법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 사고사망자 수는 828명으로 집계됐습니다.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입니다. 각 나라의 산업구조가 상이한 관계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20년 전과 비교해 36.6%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간 노·사·민·정 모두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 왔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반면 후진국형 재해라 불리는 떨어짐, 끼임 등의 재해는 여전히 빈발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국, 미국 등 이른바 안전 선진국 등에서도 이 같은 재해형태는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만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후진국형 재해가 빈발하는 주된 이유는 산업현장에서 작업자가 해당 작업에 노출되는 빈도가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고 발생 메커니즘을 고려해 보면, 설비, 작업절차, 환경여건 등의 결함을 관리·감독하기 쉽지 않은 것도 주요 배경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여러 사고분석결과를 살펴보면 작업자가 설비를 잘못 사용하거나, 작업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등과 같은 불안전한 행동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 정부가 패트롤과 같은 현장 밀착형 관리·감독을 통해 단시간에 감소효과를 본 것으로 판단합니다. 하지만 설비적 결함 등이 심각했던 2000년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앞으로 급격한 산재감소 효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향후 산업재해를 지속 감소하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며, 빈틈없는 안전관리 시스템을 비롯해 작업자가 일터에서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등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안전문화가 정착·확산돼야 하며, 이를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종배 회장이 지난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 '2022 춘계학술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백종배 회장이 지난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 '2022 춘계학술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Q. 산재공화국, 안전후진국 등의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특히 상대적으로 안전관리가 취약한 중소사업장 안전역량을 강화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중대재해가 발생해 안전진단을 받은 사업장에서 그 다음 해에 또다시 점검이 이뤄졌을 때 똑같은 문제가 적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일터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 같은 문제가 거듭 반복되는 이유는 재해 발생의 근본원인이 되는 뿌리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 사업장에서 설비를 고정하기 위해 중국산 볼트를 사용하다 설비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강도가 약한 볼트 그 자체가 아닙니다. 설비를 설치·보수하는 하도급 업체, 강도가 약한 중국산 볼트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배경 등을 봐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은 계획(Plan), 실시(Do), 평가(Check), 지속적 개선(Act) 등을 기반으로 작동합니다. 안전보건공단에서 추진 중인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MS)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만 이러한 활동을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따라서 중소규모 사업장에 적합한 툴을 보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기업 규모와 리스크에 따라 예산 규모가 다르므로 합리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편성하고 시스템의 이행에 맞게 집행되도록 최적의 자원관리가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지속성입니다. 시스템 자체는 짧은 시간에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 역할과 기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중소사업장에서는 PDCA 주기를 기본 관리 개념으로 삼고, 안전관리에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기업의 경영방침과 합치되는 리스크 관리 기반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간다면,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를 감소시키는 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떠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중처법은 근로자의 안전권과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법 시행 전후로 여전히 논란을 빚고 있으며, 최근 정부가 법 시행령 개정 추진을 공식화하기도 했습니다.

중처법이 근로자의 안전권과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명실상부한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과학적이고 근원적인 예방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수규자의 입장과 역할의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적용해야 하며, 법 적용 시에는 기술적, 과학적, 논리적 입증도 필요합니다. 폭넓은 사회적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이해관계자 간에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리스크 기준 개발, 실질적인 안전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이 우리나라의 안전보건활동의 새로운 틀을 마련할 골든타임입니다. 우리 학회는 앞으로 특별세미나 등을 통해 중처법이 제정 취지에 맞춰 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보완‧개선사항 등을 제헌해 나갈 계획입니다.

Q. 학회장으로서 포부 또는 전국 사업주, 노동자, 안전보건관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모두가 안전한 사회 만들기’, 안전학회 회장으로서 가진 원대한 꿈입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노·사·민·정·학 각계의 역량과 지혜, 그리고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먼저 각 주체의 입장과 역할의 차이를 서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에 기술적, 과학적, 논리적 입증을 위한 노력도 반드시 뒷받침 돼야 합니다. 안전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손봐야 할 과제입니다.

아울러 현장 안전을 측정하고, 검증하며, 지속적인 개선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모두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유명한 경제학자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만약 당신이 측정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개선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안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성과를 측정할 수 없고 정량화된 안전목표를 정의하여 결과를 얻을 수 없다면, 더 잘할 수 없습니다. 체중계를 밟지 않고 체중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많은 사업장에서 안전문화(Safety Climate), 일하는 안전환경 등을 좋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향상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향상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즉 측정할 수 없다면 더 나은 예방활동을 기대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안전관리 계획의 목표와 거리가 있는 서류만의 의사결정을 만들 뿐입니다.

안전을 전공한 전문가는 리스크 평가에 대해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는 데 경주하고, 안전을 측정·검증·개선하려는 노력이 계속될 때 우리 일터에 빈발하는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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