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 본부장

최근 서울시와 서울디지털재단은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주요 키워드를 선정‧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3대 주요 키워드로 코로나19,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자율주행차 등이 꼽혔다. 서울시 내 산업단지 등 위험시설이 많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처법이 3대 키워드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중처법이 올해 초 본격 시행되고, 연일 언론에서 중대재해 관련 속보가 보도되는 상황에서 그간 기업들은 중처법상 의무이행 사항 등을 준수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수개월이 흐른 지금, 본 법이 의도한 소기의 목적대로 중대재해는 줄어들고 있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처법이 시행된 1월 27일부터 지난 3월 26일까지 중대산업재해 적용대상인 50인(공사금액 50억)이상 사업장에서 총 30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해 36명이 사망했다. 전년 동기(46건, 47명)와 비교해 소폭 줄었다. 단 월별로 봤을 때에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시행 첫 달(1월 27일 ~ 2월 26일) 각각 9건, 15명에서 두 달째(2월 26일 ~ 3월 26일) 21건, 21명으로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설업의 경우 중처법 시행 직후 이른바 ‘1호 사업장’이 되지 않기 위해 작업을 전면 중단하는 등의 전후 사정을 감안해 봤을 때 본 법이 산재 사망사고 감소에 과연 효과가 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단기적인 성적표만 두고 이 법의 효과를 예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러나 중처법의 모태가 된 기업과실치사법을 먼저 시행한 영국의 경우에도 산재감소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50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별도의 안전조직을 갖추고 가능한 범위에서 예산, 인력 등을 대폭 확대하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가 획기적으로 줄지 않고 있다는 사실, 여기에 더해 오는 2024년 대기업 대비 재정‧인력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5~49인 사업장에 중처법이 본격 적용된다는 점 등을 생각해 볼 때 본 법이 과연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중처법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처법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장의 안전수준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외부적인 규제나 강한 처벌은 안전에 대한 사업주의 경각심을 제고하는 등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효과는 얻을 수 있겠지만,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소 등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외형적, 형식적 구축만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안전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해외 사례 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처법은 과도한 처벌 규정에 비해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할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내용이 포괄적이고 불명확하다. 재해예방을 위해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할 경영책임자들의 입장에서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소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장 자발적으로 안전원리에 입각한 재해예방활동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업장 전 구성원들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율적인 재해예방활동을 꾸준하게 전개해 나가야 하며, 경영책임자도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만 사업장 내 성숙한 안전문화가 조성될 수 있고,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소를 이뤄낼 수 있다.

하루속히 중처법이 합리적으로 개선돼 경영책임자가 재해예방을 위한 ‘선택과 집중’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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