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김 군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 아파했던 제가 5년 뒤 같은 이유로 친구를 잃고 이 자리에 있습니다. 잠깐의 슬픔과 분노로 흘려보냈던 수많은 산재사고가 제 친구까지 죽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5월 24일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개찰구 앞에서 김벼리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난달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이선호씨의 친구다.

매년 5월 마지막 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는 국화꽃이 놓인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이곳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19살 ‘김 군’을 애도하기 위해 시민들이 놓고 간 것이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그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우리사회가 다짐했던 산재 예방과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불거졌던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 또한 계속되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16~2020년 연령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만 30세 미만 산업재해자 수는 2016년 8668명, 2018년 1만181명 그리고 지난해 1만1109명으로 계속해서 증가했다.

2017년 제주 생수공장에서 고교생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이민호군에 이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설비작업 중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 그리고 올해 항만에서 일하다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대학생 이선호씨까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꿈을 채 펼치기도 전에 일터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사고들은 안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그리고 법과 제도가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김용균씨의 사망사고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에 기폭제가 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고 변화가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이선호씨의 죽음을 계기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마련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법의 현장 작동성이다. 협력업체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전부 개정 산안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2년째지만, 위험의 외주화와 협력업체 노동자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내년 1월에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아직은 미지수다. 

결국 문제의 해답은 각 실행 주체들에 달려있다. 정부의 힘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 세 주체가 힘을 합쳐 문제점을 찾아내고 실제 현장에 필요한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죽음에 빚져 변화를 만드는 사회. 이제는 끝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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