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강인하게 키워보려고, 돈의 소중함을 가르치려 아르바이트를 하게 했던 것입니다. 돈을 벌어 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이를 사지로 밀어 넣었다는 죄책감이 저를 많이 힘들게 합니다”

경기도 평택항에서 화물 컨테이너 정리 작업 중 사망한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23세)군의 아버지 이재훈 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故이선호 군은 이 씨의 휴대폰에 ‘삶의 희망’이라고 저장돼 있을 정도로 각별한 존재였다. 아픈 큰 누나를 잘 돌볼 정도로 가족 사랑이 남달랐으며, 군복무를 마친 뒤에도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자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자처할 만큼 든든한 아들이었다. 이 씨도 그런 아들이 기특해 돈의 소중함을 배워보라며 일을 허락했다. 헌데,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을 이 씨는 몰랐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 22일, 이 군은 원래 맡아온 동식물 검역 업무가 아닌 개방형 컨테이너 해체작업의 보조로 투입됐다가 참변을 당했다. 원시적 재해였다. 개방형 컨테이너를 뒷정리 하던 그에게 300kg에 육박하는 컨테이너 벽체가 덮쳤다. 옆에 있던 동료 외국인 노동자가 즉시 이 군을 구하려고 벽체를 들어 올리는 등 애를 썼지만 허리를 다칠 만큼 벽체의 무게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군은 새로운 작업에 투입되면서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이 군 옆에서는 지게차가 운용되고 있었으나, 신호수도 없었고 안전한 작업을 관리감독하는 관리자도 부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안전관리자를 관리자로 정정합니다.


이번 사고는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일터에서 협력업체 청년 노동자가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됐다가 사망했던 그 사고들 말이다.

더욱이 김용균씨 사망사고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 군의 사망은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소 잃고도 외양간이 방치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여당은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과 중대재해처벌법의 하위 법령 제정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또한 항만물류 사업장의 복잡한 하청구조와 인력구조, 안전관리 현황 등도 면밀히 살펴,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생각이다.

산업재해 예방과 노동자 안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껍데기만 바뀌어서는 산업재해를 막을 수 없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강화되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조선의 문신 퇴계 이황은 ‘신기독(愼其獨)’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스스로 떳떳하게 행동하라는 뜻으로 홀로 있을 때에도 방심하지 말고 행동을 삼가라는 의미다. 당신의 일터는 어떠한가. 혹시 외부의 관심이 집중될 때에만 잘 보이기 위한 안전의 껍데기를 두르고 있지는 않은가. 젊은 청년의 죽음 앞에 반성하며 우리 일터에서 추구하는 안전의 실체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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