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해마다 여름이면 공항 출국장에 여행객이 장사진을 이루더니만 금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한가롭기만 하고, 반대로 국내 여행지는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이는가 보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도 여행을 가야 하는 건가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하기야 평소에는 출퇴근으로 마음 편히 집을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여름휴가는 모처럼 며칠간의 여유와 휴식을 보장해 주는 기간이니.

하지만, 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경험과 생각을 건네 준다 . 아니,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랬다. 그 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몇 가지만 되돌아 보면. 처음 음악의 도시를 방문했던 날 필자는 한껏 들떴었는데, 한 도로 옆 공사 현장을 보고는 한 순간에 흥이 깨지고 말았었다. 비 뿌리는 날 관리자는 안전모에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 정작 작업자들은 안전모도 없이 되는 대로 T셔츠를 입고 작업 중이어서!

한창 위탁과제를 수행하던 중 방문했던 때에는 가는 곳마다 지게차, 로우더, 백호우만 눈에 들어왔었다. 한국에서는 건설기계 전후에 범퍼처럼 향상된 센서를 곳곳에 붙여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던 시기라, 작업하던 운전자에게 말을 붙여 물어 봤더니. 앞뒤로 고개를 돌려 확인하면 되는 것을, 왜 굳이 곳곳에 그런 것을 붙이느냐고 내게 되물어서 멋쩍었던 경험.

그것뿐인가, 바다와 인접한 어느 도시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들에 모두 하나같이 쐐기목이 괴어 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적도 있었고, 유럽 최고의 멋진 폭포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방문했던 강변에서는 구명조끼 없이 배를 타고 폭포 밑까지 들어가는 걸 보고, 지레 겁을 먹고 폭포 구경을 포기했던 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아, 문화의 차이란 게 이런 거구나. 이런 건 배워야겠다, 저런 건 배우면 안 되겠구나 느끼는 게 여행의 묘미 아니던가. 그래서 어떤 이는 여행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다른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현실과 삶의 비범함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사는지 배우는 일이다.
                                    - 파울로 코엘료 -

교육 효과를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말이 있다. ‘기술전이(Transfer of Skill)’라고 하는 것인데, 교육을 통해 배우고 접한 내용이 실제 상황과 비슷할수록 배운 바를 쉽게 활용할 수 있어 교육효과가 높다. 그래서 만드는 게 체험학습장이고, 활용하는 기법이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이며, 힘들지만 직접 가서 배우는 것이 현장답사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여행을 단순히 놀러가는 것이라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원래 현대 영어의 여행 ‘트래블(travel)’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프랑스어 트라바유(travail)에 이른다고 한다. 그 의미는 ‘고통’. 쉽게 여행을 할 수 있는 현재와 달리 당시의 여행은 많은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는데, 그 때문인지 현대 프랑스에서도 ‘travail’은 ‘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이 주는 즐거움은 인간이 갖는 즐거움 중의 큰 부분이다. 힘든 일이 고통스러워 피하려는 게 인간에게 당연해 보이지만, 반대로 너무 쉬운 일도 피하려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만큼 일의 보람, 성취감을 즐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통스럽지만 몸을 움직여 생소한 곳에서 경험하는 색다른 문화는 방문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그에 못지않게 안전문화도 많이 발전해 왔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훼리호 침몰 등 대형사건이 한 해가 멀다 않고 이어지던 사회였다.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된 것이 불과 30여 년 전인 1989년. 그 한 해에만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갔었다고 한다. 물론 시원치 않았던 시절에 외화낭비를 막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고 하지만, 이제 와서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 많은 사람들의 향학열(?)을 국가가 막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곳곳의 공사현장에서 몸빼 바지에 머리에 수건 두른 아주머니들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던 시절에, 안전 선진국들의 문화를 접한 선배들의 경험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작년(2019) 말에 집계된 내국인 출국자 수는 2,871만 명을 상회했다고 한다. 이제 해외여행은 충분히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테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새로운 문화경험에 목말라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의 코로나는 그런 학습기회를 막고 있는 셈이다. 갑갑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언제쯤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내 나라, 내 땅에서 더 배울 건 없는지 한 번 큰 맘 먹고 떠나 볼 만한 계절이다. 그래서 별 거 아닌 말이지만, 또 가슴에 와 닿는다.

의미는 있는데 재미는 없는 활동 : 노동
의미는 없는데 재미는 있는 활동 : 게임
의미도 있는데 재미도 있는 활동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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