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아니 세상에, 그 많은 기름을 보관하면서, 그까짓 풍등 같은 불씨 하나를 제대로 막을 궁리를 못했단 말이야?’

지난 10월, 한 외국인 근로자가 무심코 띄운 풍등 하나로, 어이없이 중형 승용차 6만대 분, 무려 440만 리터의 기름을 태워버렸다는 뉴스를 보고서 퍼뜩 순간적으로 든 이 느낌은, 아마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최근에야 그래도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쪽에서는 핵실험이 반복되고, 남쪽에서는 한미 연합훈련이 계속되고 있었던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한 발의 포탄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는 말일까? 그러고도 그 많은 양의 기름을 보관하고, 관리한다고 돈을 받아왔다는 말인가! 국민들이 보기에는 어떤 분들이 어떻게 저장탱크를 설계하고, 어떻게 관리해 왔든, 예산부족이니 역부족이니 하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아마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고, 직무태만이나 직무유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 시설의 관계자들이 다른 분야, 예를 들어 두렵기로 소문난 원자력시설 분야의 안전확보 개념을 조금만 이해했더라면, 앞서 설명한 유류저장시설에서의 그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자력시설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에서의 사고나 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Chernobyl) 사고, 그리고 2011년 일본 동북부 지방의 대규모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현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사고를 통해 용인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고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객관적 자료에 따른 전문가 분석에 의하면, 원자력발전소의 사고 . 적어도 방사능 누출사고 - 확률은 오히려 자동차 사고나 항공기 사고에 비하여 확률은 매우 낮다(물론 자동차 사고나 항공기 사고는 과거의 통계자료가 있지만, 원자력발전소의 사고통계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신뢰성공학 분야의 지식과 기법을 이용하면 원자력발전소의 고장 확률이나 사고확률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원자력발전소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적대적인 세력에 의하여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안전, 안전, 그리고 또 안전을 지향하여 설립된다. 그 결과, 원자력발전소는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한 다섯 겹의 방호벽을 가지고 있다. 즉, 핵연료에 가까운 안쪽으로부터 핵분열에 의하여 생기는 고체성 또는 기체성 방사성 물질을 밀폐시키기 위한 제1방호벽(펠렛), 핵연료 펠렛에서 나온 기체 방사성물질까지도 밀폐시키는 제2방호벽(연료 피복관), 만약에 연료 피복관에 결함이 생겨 방사성물질이 새어 나와도 차단하는 23cm 두께의 강철로 된 제3방호벽(원자로 압력용기), 그 다음에는 원자로 건물 내벽에 있는 6~7mm 두께의 강철판으로 된 제4방호벽(격납용기),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두께 약 120cm의 철근콘크리트 제5방호벽 (원자로 건물), 이렇게 겹겹이 안전장치를 하고 있다. 그러고도 반복되는 안전성평가와 훈련을 통해 시설과 인명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다.

자, 이쯤은 되어야 ‘안전’을 생각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위험해 보일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에게는 오히려 자동차 사고나 항공기 사고가 더 위험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풍등 하나에 이 난리인데, 앞으로 드론까지 허용되어 날아다니게 되면, 혹시라도 불장난이라도 하려 한다면 그 때는 저유탱크 화재를 어떻게 막을 계획이셨는지?

무작정 남을 따라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분야를 되돌아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저유탱크 관계자분들. 한 번쯤 원자력분야의 시설도 눈 동냥해 볼 만하지 않을까.

첫눈이 왔다고 계절이 바뀌었나 했더니, 이번에는 유명 통신사의 통신구에서 화재가 나서, 몇 시간째 통신이 마비 중이란다. 복구에도 얼마나 걸릴지 예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하고, 휴대전화도 안 되고, 인터넷 TV도 안 되고 …. 에그그, 휴대폰 중독자분들, 지레 숨넘어가게 생겼다. 그래서인지, 이참에 국가핵심기관에 대한 재난대비 계획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안전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낱낱이 알몸으로 드러난 거 같아 한편으로는 민망하고,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기 짝이 없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은 없기를,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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