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기술로 포장해도 안전의 빈틈은 채울 수 없어

여행사를 통해 해외로 패키지 관광을 떠나면, 명소마다 잠깐 둘러보고 현지 가이드의 “빨리빨리 승차하세요” 소리에 서둘러 버스에 올라탄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모습이 이제는 현지 사람들에게도 다른 나라 관광객과 한국 관광객을 구별하는 방법이 됐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빨리빨리’가 세계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고 만 것이다.

‘빨리빨리’란 말로 대변되는 우리의 조급증은 시급히 고쳐야할 고질병 중 하나로 손꼽힌다. 급속한 경제발전시기 퍼져나간 ‘남보다 한발자국이라도 먼저 앞서가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관념이 수십 년에 걸쳐 고착화되면서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안전분야에서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교통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가 발생하는 교통사고나, 공기 맞추기에 급급해 서둘러 시공을 해서 건물과 교량이 무너진 사고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 빨리빨리에 기인한 사고의 저변에는 원칙과 기본을 우습게 여기는 인식이 깔려 있다. 원칙과 기본의 준수는 널리 알려져 있고 수차례 증명이 됐듯, 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이를 너무도 가볍게 여겨왔고, 그 대가를 지금에서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산업재해로 매년 2500명 이상이 숨지고, 교통사고로 인한 연간 사망자가 1만명에 달하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고사망자 수치는 OECD 가입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최소한의 원칙마저 우습게 아는 행동이나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풍조는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결국 사회도 멍들게 한다. 겉만 있고 속이 없는, 겉과 속이 다른, 말만 있고 행동이 없는 껍데기만 존재하는 사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법과 원칙을 어기면 더 큰 손해를 보는 사회, 즉 정상적인 사회로 되돌려야 한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조급증과 적당주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잘못된 습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살아가는 방식, 건설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을 모두 바꾸어야 할 때가 도래했다.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의 경쟁상대는 국내가 아니다. 또 개발도상국도 아니다. 말 그대로 세계시장이다. 이미 우리는 선진국, 주요 글로벌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의 기술과 경쟁력이 세계시장을 누빌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기초와 기본이 여전히 부실하기에 우리의 승리와 경쟁우위는 아직까지 불안하기만 하다. 최근 판매중지와 단종 사태를 겪고 있는 모 대기업의 신제품 핸드폰이 이를 증명한다.

안전이 부족하면 또 안전에 빈틈이 있으면, 아무리 기술로 포장해도 이는 언제 무너질지 모를 모래성과 다름없다. 이제부터라도 알맹이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껍데기를 씌우는 원칙과 과정을 철저히 지켜나가야만 할 것이다.

지금부터, 나부터, 작은 것부터 원칙과 기본을 지키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안전한 일터, 안전한 나라를 앞으로의 글로벌 시대에서 우리를 앞서나가게 할 새로운 경쟁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본이 바로서고 원칙이 준수되어야 흔들림 없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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