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 고용노동부 성남고용노동지청장

종래 안전에 대한 평가는 재해실적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

“귀사의 작년 재해실적은 어떠했습니까?”, “경미한 재해만 2건 발생하였습니다.”, “우리 회사는 최근 5년간 무재해가 계속되었습니다.” 같은 식이었다.

그러나 안전성적을 재해건수만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재해는 위험성 크기에 비례하여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보건관리를 열심히 추진해도 재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안전보건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일정기간 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재해가 몇 건 발생했는지 보다 안전보건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있다. 재해발생 여부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안전보건관리가 착실하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제발 재해가 발생하지 않기를”이라고 기원하는 것만으로는 산재예방을 할 수 없다. 아무리 마음씨 좋은 신이라도 기가 막힌 나머지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결과만으로 보는 안전보건실적 평가에 대비되는 것이 체제의 관리, 즉 관리시스템의 구축과 이행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가 관리시스템으로써 체계적·계획적으로 실행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시스템이라고 하면 어렵게 들리지만 기본은 간단하다. 일반적인 업무의 흐름인 ‘P(계획)-D(실행)-C(평가)-A(개선)’에 따라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층 높은 차원인 안전보건방침의 표명은 이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업주에 의해 제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안전보건이 사업주 책임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스태프가 작성하고 최고경영자가 이것에 기계적으로 사인을 하여 왔다면 이제는 최고경영자로부터 방침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스태프는 일이 줄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사업주가 사업장의 실정에 맞는 방침을 경영적 입장에서 결정하기 위해서는 스태프가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스태프로서는 지금까지보다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안전보건방침의 표명 다음으로는 안전보건목표의 설정이 이어진다. 방침·목표의 설정에 있어서는 현상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의 기업의 안전보건현상을 몰라서는 적절한 방침·목표가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안전보건관리는 사업주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는 것이지만, 스태프는 방침·목표가 결정되기까지 느긋하게 쉬고 있어서는 안 된다. 사업장에 어떤 유해위험요인이 존재하고 어떤 법 규제를 받고 있는지를 조사하여 안전보건수요를 정하는 것은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작성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이를 위해 스태프는 재해기록, 법규는 물론, 작업환경측정·건강진단, 작업장순찰, 기계·설비점검결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의사록, 그동안의 안전보건활동상황을 기초로 앞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는 문제를 가급적 상세히 검토하고 이를 안전보건계획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한편 관리시스템의 구축을 위해서는 문서관리가 필요하다. 문서관리의 매뉴얼 작성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서툰 부분이다. 고생하여 가까스로 작성한 매뉴얼도 ‘서류꽂이’에 고이 간수되어 깨끗이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유지관리도 되지 않는다. 작성하는 것 자체가 목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매뉴얼은 비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용되기 위한 매뉴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성 단계부터 실제 사용을 목적으로 현장상황에 맞게 작성되어야 하고 이를 안전교육 등을 통해 근로자에게 철저히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안전작업이 정착될 수 있다. 요컨대, 관리시스템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안전기술과 안전관리기법을 내용으로 포함한 실천적인 매뉴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에 안전보건관리의 시스템적 접근이 많이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콘텐츠가 담보되지 못하면 자칫 형식적인 관리시스템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의 전반이 그렇듯이 관리시스템에서도 지금 중요한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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