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선 원장 “유연한 형식의 법 체계로 변화 필요”

 

법 규정을 세밀하게 만들어 규제하는 것보다 포괄적으로 사업주가 지켜야할 기본원칙을 제시해주고, 이를 준수하게 유도하는 것이 산업재해예방에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박정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은 최근 발행된 연구원 뉴스레터(No.12)를 통해 이 같은 의견을 개진했다. 박 원장은 영국을 예로 들며 너무 복잡하고 세세한 법 규정의 단점을 지적하고, 큰 틀의 목표와 원칙만 제시한 후 이를 준수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은 산업안전보건법(Health and Safety at Work)이 제정된 지 올해로 만 40년이 되었다. 1974년 이 법을 제정하여 처음 적용했을 당시 근로자의 업무상 사망자 수가 651명이었는데 가장 최근(2012/2013년)에 발표된 통계를 보면 근로자와 자영업자를 합쳐 148명으로 집계됐다. 또 사망하지 않은 업무상 손상자수는 같은 기간 동안 75% 이상 줄었다.

특히 1974년 이전까지 영국의 산업재해통계에서 자영업자가 제외되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망자수의 실제 감소폭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게 박 원장의 부연설명이다.

박 원장은 이런 놀라운 재해예방 성과의 이유로 ‘로벤스보고서(Robens Report, 1972년)’를 지목했다. 로벤스보고서는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하게 한 배경이 되는 보고서다. 당시 보고서는 영국의 산업재해가 더 이상 줄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원인이 법 규정이 너무 복잡하고 세세하여 사업주가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보고서는 크고 넓게 사업주가 지켜야 할 목표만 제시하고 ‘리스크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리스크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기본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법률체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후 로벤스 경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새로 만들어진 영국 산업안전보건법은 세세하고 구체적인 처방으로 되어 있던 이전의 업종별 법규로부터 완전히 탈피했다. 대신 목표와 원칙만 제시하고 실행규칙과 지침(codes of practice and guidance)으로 보완하는 유연한 형식의 통합된 법 체계로 바뀌었다. 그 결과 영국은 산업재해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박 원장은 “신기하게도 오늘날 영국의 산업구조가 중공업이나 제조업 중심의 산업으로부터 크게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법이 여전히 잘 먹히고 있는데다, 처음 제정될 당시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이해관계자들은 ‘리스크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리스크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 기본원칙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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