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진모

KISA 50年史, 줄거리가 될 스토리⑭
김대중 정권이 막을 내리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시기

본격적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기반 조성

이 시기 우리나라 산업분야의 주요 변천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2000년 9월 29일에는 포항제철이 민영화를 완료하게 된다. 2001년 2월 16일에는 대우자동차가 1,750명을 정리해고 절차에 들어갔으며, 그해 9월 21일에는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사에 매각된다.

2001년 4월 1일에는 삼성그룹이 현대그룹을 제치고 국내 재계1위로 부상한다. 2002년 3월 28일에는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Moody’s Investors Service)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3로 두 단계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사회 기반시설도 대폭적으로 확대된다. 2000년 경기도 평택과 충남 당진을 잇는 서해대교가 개통되었으며, 2001년 3월 29일에는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였다. 2001년 11월 21일에는 대전과 진주를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1월 28일에는 영동고속도로 전구간 확장공사가 완료되었다. 2003년 4월 28일에는 경남 남해에서 사천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3.4km의 연륙교가 개통되었다.

참고로 2000년 8월 9일에는 정몽헌(鄭夢憲)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하였는데 정 회장은 개성을 공단부지 및 관광지로 조성하는데 합의하고, 2003년 6월 30일에는 개성공단의 기공식이 거행된다. (그 후에 여러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노동 분야의 역사

2000년 8월 1일에는 의약분업이 시행되어 이에 반대하는 전공의들, 그리고 8월 11일에는 의료계가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11월 11일 의약정협의회가 약사법개정안에 합의하는 것으로 의료계 파업은 일단락되었다. 2001년 6월 12일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노조가 연대파업을 벌였으며 다음 날인 13일에는 대학병원의 노조까지 연대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협회도 현 구로동으로 이전 했고 정치권도 DJ정부가 물러나고 노무현 시대로 이전되었던 시기였다.
2002년 12월에는 노무현 후보가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이 젊은날 근로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산업안전문제에 관심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당시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당선소감 연설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소감 연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변방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의존의 역사를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심국가로 웅비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살려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도전을 극복한 저력이 있습니다. 위기마저도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 지혜와 저력으로 오늘 우리에게 닥친 도전을 극복합시다. 오늘 우리가 선조들을 기리는 것처럼, 먼 훗날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기억하게 합시다.

우리는 마음만 합치면 기적을 이루어 내는 국민입니다. 도시민이나 농어민, 그리고 산업근로자 우리 모두 마음을 모읍시다.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새 역사를 만드는 이 위대한 도정에 모두 함께 동참합시다. 항상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모든 것을 국가와 민족, 여러분 앞에 바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감사합니다.

각종 안전사고 및 재해 발생

2002년 6월 29일에는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침범 및 우리 측에 선제공격을 하여 약 25분간 남북 간의 교전이 계속되었다. 연평해전 이후 3년 만에 벌어진 2차 서해교전으로 우리 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8월 31일에는 태풍 루사(Rusa)가 전국을 덮쳐 강릉지방의 1일 강수량이 897mm로 기록되는 등 특히 강원도 동부지역에 많은 피해를 낳았다.

2002년 12월 14일에는 여중생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이 갓길을 걸어가다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시청 앞 광장 등에서 대규모로 일어났다. 2001년 5월 16일에는 경기도 광주시의 예지학원에서 화재사고가 발생 10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3년 2월 18일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날이다. 자신의 신병을 비관한 56세의 남성 김대한이 대구시내 지하철1호선에서 운행 중이던 열차에서 방화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중앙로역에서 상·하행선 열차 12량이 불에 타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산업재해 현황과 협회의 활동

이 시기에는 경제가 다소 회복세에 들어선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안전이 등한시 되는 추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산업재해율은 2000년 0.73%에 비해 다소 높아지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 정부는 2000년부터 추진했던 新산업안전선진화 3개년 계획과 제1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하면서 산재를 줄이는데 중점을 뒀다. 협회도 정부의 이러한 대책에 적극 동조하게 된다. 특히 2001년 안전보건 11대 기본수칙 지키기 운동, Clean 3D 사업 등을 통해 안전문화를 확산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반도공영(주)(2001.1.19), (주)BSI인증원(2001.4.4), 대한산업보건협회(2001.6.8), 한전 태안화력본부(2002.5.11), 미국 듀폰사(2003.2.20), 베트남 국립노동보호원(2002.4.24), 중국 청도 안전과학기술연구중심(2002.10.16) 등 국내·국제적인 업무협약을 추진하는 한편, 중국 노스폴차이나 행림공장 등 해외 진단을 활성화하면서 업무범위를 크게 확장시키게 된다. 2002년부터는 건설안전컨설팅 사업도 시행한다.

그리고 협회 역사에 있어 이 시기 의미있었던 일 중 하나는 현 구로동 중앙회 건물로의 이전이다. 협회는 2001년 5월 27일 당시 이홍지 회장을 비롯해 김영수 노동조합위원장, 홍범표 감사, 김문영 이사, 구해운 이사 등을 포함해 중앙회 전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회 사무실 이전 기념식’을 개최하고, 그해 7월 6일 제37주년 창립기념일을 맞이해 김숙현 전임회장, 송지태 당시 노동부 산업안전국장, 문형남 당시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 윤임중 당시 산업안전보건협회장 등 관련단체장을 비롯해 160명의 귀빈을 초청한 가운데 ‘중앙회 이전 현판식’을 성대히 거행하면서 협회의 새로운 출발을 적극 알린다.

특히 이 자리에서 현재 협회의 CI도 새롭게 발표하면서, 명실상부한 종합안전단체로서의 위상과 안전선진국을 향한 협회의 의지를 대내외에 적극 과시하게 된다.

2002년 1월 발표한 ‘KISA 안전보건표지’도 산업안전 분야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안전표지는 작업자나 주변 모든 사람에게 위험을 알림으로써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안전조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별표1의 2에는 금지표지 8종, 경고표지 15종, 지시표지 9종, 안내표지 7종, 유해물질표지 16종 등 총 55종에 대한 규정만이 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에 협회는 2002년 1월 정부를 대신해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안전표지 기준을 제작·공표하여, 사업장에서 이를 활용해 작업장 전반에 걸쳐 근로자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안전한 작업을 유도하도록 했다.

‘KISA 안전보건표지’는 당시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정된 55종보다 범위를 넓혀 총 216종 648개로 세분화시킨 것이 특징이다. 그 예로 출입금지 표지의 경우 기존 산안법상에는 기본형 S표지(Standard) 1종 1개뿐인데 비해, KISA 기준은 S표지에 가로형 V표지(Vertical)와 세로형 H표지(Horizontal)를 추가하여 3종형 시스템으로 종류가 세분됐다. 아울러 KISA 기준은 명칭, 용도, 사용장소 별로 중분류하고 한글과 영문으로 각각 구분 표기했다.

예를 들어 기존은 출입금지 하나로만 구분된데 반해 KISA 기준은 진입금지, 관계자 외 출입금지 등으로 장소 및 용도별로 접근금지표지를 추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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