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 前서울시민안전체험관장

원자력을 잘못 다루었을 때 그 위험성이 엄청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또 원자력발전소는 전력 수급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고장으로 멈추어 서는 일이 없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전력수요 증가로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 이런 상황 속에 몇 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원전납품비리는 원자력가동을 중지시켜 가뜩이나 부족한 전력 수급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국민들은 작금의 상황에 대해 큰 실망을 하고 있다.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아직도 이런 엄청난 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얼마 전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원자력 발전소의 불량부품 납품비리와 관련해 케이블 발주업체인 한국수력원자력, 시험결과 승인기관 한국전력기술, 시험업체 새한티이피의 임직원 등 시험성적서 위조가담자에게 징역을 구형했다. 서로 짜고 불량케이블을 정상인 것처럼 속여 원전에 납품했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문제가 된 케이블은 핵연료 과열이나 이상으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안전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원자로에 제어신호를 보내는 중요한 부품이다. 고밀도 방사능과 고온, 고압증기 안에서도 정상 작동해야하기 때문에 엄격한 검정을 통과한 뒤에만 납품할 수 있다.

현재 불량 케이블을 사용한 원전6기는 케이블 교체 공사를 하느라 가동이 중단돼 있다. 이에 대한 손실은 엄청났다. 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케이블 교체비용 945억원, 발전 손실액 1조3500억원, 원전가동중지에 따른 전력 구입비 수천억원 등 실질피해액이 무려 9조9500억 원에 이른다.

게다가 국민 누구나 할 것 없이 전력을 아끼느라 지난 여름 내내 불안과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던 점까지 더한다면 그 피해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시 필자가 재직 중이던 직장에서도 에어컨을 켜는 시간을 조정하면서까지 절약했고, 점심시간에는 모든 전등을 소등하고 컴퓨터 등 모든 전자기기의 전원을 껐다. 서민들은 어땠을까? 항상 전기세가 걱정인 서민들은 절약하라는 말이 없어도 늘 절약을 한다. 필자의 집만 해도 겨울철 여름철 할 것 없이 거실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다. 평소 삶이 이런 서민들인데, 당시 전력난 속의 삶은 어땠을지에 대해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이번 원전비리는 국가나 조직이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을 갖췄다 해도 운영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잘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부실한 개인이 모인 집단에는 아무리 지원을 해줘도 결국 문제가 발생한다. 실로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식이다.

우리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기억하고 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반경 30킬로미터 지역이 폐허가 돼 있다. 주민이 모두 떠나면서 버려진 가축 수백만 마리가 죽어 나가고 있고, 농작물은 이미 고사된지 오래다. 도쿄전력이 사고 후 지금까지 배상한 액수만 43조8000억 원에 이르고 방사능 제거 비용까지 합하면 피해액이 100조원을 넘을 것이라 한다.

과연 이것이 그저 남의 나라 일일까. 우리나라도 ‘방사능 긴급보호 조치 계획 구역’으로 정한 원전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487만 명이 살고 있다. 우리 국민의 10분의1에 해당된다.

원전비리는 개인적 양심의 문제뿐만 아니라 수백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토를 황폐화 시킬 수 있는 대형 범죄이다. 이제라도 원전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은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양심을 지켜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이번 원전비리를 포함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업무에 종사하는 기관·단체의 비리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 일벌백계를 함으로써 다시는 유사사고가 재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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