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용 안산산재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웹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2년째 근무 중인 A(31·여)씨는 얼마 전 기획대리로 승진을 하여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작성해둔 시안을 프레젠테이션 하기 위해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했지만 탐탐치 않은 반응을 듣고는 돌아오는 길에 스트레스를 풀 겸 쇼핑을 하려고 인근 백화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평소에 점찍어 두었던 물건이 다 팔려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은 물건들만 잔뜩 구입하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붐비는 시간과 겹쳐버려 지하철 안은 승객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그 와중에 다음 환승역에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숨쉬기도 거북한 상황이 됐다. 그 순간 A씨는 숨이 막히는 증상과 함께 온몸이 떨리는 것 같았고 식은땀이 흘러 내렸으며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슴도 진정이 됐고 숨도 잘 쉬어졌다.

집으로 황급히 들어온 A씨는 샤워를 하며 방금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런 증상이 한 달에 두 세 번씩 반복됐다. 그때마다 A씨는 이러다가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낯선 곳에서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감에 사로 잡혔다.

점점 A씨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가는 것도 겁이 나고 의기소침해졌다. 가까운 내과의원에 방문해 보았지만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좋은 생각만 하고 운동을 자주 하라는 등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해줄 뿐이었다.

52세의 대기업 과장인 K씨는 얼마 전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직선 주로에서 잘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의 골목길에서 승용차 한 대가 나오며 자신의 차 옆구리를 정통으로 들이받았던 것이다. 신체상의 큰 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난생 처음 당해보는 교통사고에 소스라치게 놀라 며칠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자동차보험사에서 뒷수습을 잘해주었지만 왜 멀쩡하게 잘 지내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싶어 짜증이 많이 나고 신경도 부쩍 예민해졌다. 이러다 좋아지겠지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일상에 적응하려했지만 이후로도 교통사고 날 때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차에 치여서 크게 다치는 등 악몽을 꾸고는 놀라서 잠에서 벌떡 깨는 일도 잦아졌다. 그런 악몽을 꿀 때면 한동안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주변에서는 그러다가 곧 좋아질 거라 위로해 주었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기분도 계속 우울해져만 갔다.

위의 두 사례들은 각각 ‘공황장애’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의 이야기들이다. 얼핏 자신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일수도 있으나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도 이러한 일들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이러한 공황장애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강박장애,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공포증 등과 함께 불안장애를 이루는 주요 질환들이다.

적당한 긴장과 불안은 우리에게 활력이 되며 자신의 일을 준비하고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중요한 시험이 닥치면 어김없이 설사를 하고, 꼭 큰일을 앞두고 감기에 걸리고, 컨디션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일들은 우연히 발생하는 일들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의 정신건강과 불안상태에 대해서 체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다양한 신체의 신호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원래 살아가는 게 스트레스의 연속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때문에 정작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치료받을 기회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힘들어하는 경우를 흔히 보곤 한다. 불안은 시급히 치료를 증상의 하나이다. 이것을 잘 조절할 수 있다면 행복하게 사회를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 자가진단을 하여 의심이 되면 특히 일상생활, 직장, 학교, 가정에서 기능상 불편한 점이 발생하면 반드시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방문하여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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