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모의 세상보기(20)

이제는 말할 수 있겠기에…

오늘은 특별한 한 인물의 아름다운 기부로 시작되는 ‘인간사랑’ 이야기를 좀 쓰고 싶다. 살아생전 그토록 많은 훌륭한 일을 해놓고도 “내가 죽기 전 까지는 절대로 나의 이야기를 공개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故 최형규(崔亨奎) 선생의 마치 성자(聖者)같은 삶의 스토리이다.

崔선생은 시대의 아픔이요, 역사의 통증기였던 자유당 말기 3·15 부정선거에 따른 도의적 책임을 지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 부하들은 선처해 달라”하며 스스로 역사의 십자가를 메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당시 내무장관 최인규(崔仁圭)씨의 친동생이다.

연세대와 미국 뉴욕대학 경제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귀국, 35세의 젊은 나이에 경기도 광주에서 정치거목 신익희(申翼熙) 선생에게 도전해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그 후 교통부장관과 내무부장관에 발탁된 형님이 40대 초반 ‘부정선거 원흉’ 이라는 오명을 쓰고 사형장으로 끌려갔을 때,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시나리오 앞에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을 닫았던 동생이다. 집안의 큰 기둥이 쓰러질 당시 그 동생이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을 으적으적 씹어 삼킨 눈물은 얼마였을까?

필자가 새삼스럽게 신문 칼럼에다 왜 하필 이 슬픈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 그 동기부터 잠시 소개한다. 나는 작가로서 평소에 이런 신념을 갖고 있다. “神도 지나간 역사는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작가는 역사의 진실을 밝혀 낼 능력이 있다”는 신념. 그래서 조만간 출간할 『고운 최치원 선생, 그리고 그 후손들』이란 책을 집필하면서 ‘경주崔氏’들의 숨은 비화들을 취재 하던 중 우연히 ‘최인규·최형규’ 두 형제분의 숨은 스토리를 발견하였고 그 글 제목을 ‘시대의 바람꽃…’으로 정하여 집필을 하게 되었다.

당시의 기막힌 이야기는 책속에 소상히 담아내겠지만 요즘 세상에 보면 돈 밖에 모르는 ‘개(犬)보다 못한 인간’들이 너무 많아 어쩌면 한편의 반면교사가 될 이 미담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故 최형규 선생! 그 분은 88세를 일기로 몇 년 전에 작고 하셨다. 1961년! 군사혁명 재판부의 서슬 푸른 일사천리의 재판에서 그만 핏빛으로 물든 역사의 강물에다 세상에 단 한명밖에 없던 형(兄), 을 떠내려 보내고는 차라리 외국으로 이민이라도 가려 했었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그 가지에 파란 새순이 돋아나고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열매가 열린다는 진리(眞理)를 알고 있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대성(大成)을 한다. 그로 하여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하직한 형님께 대리만족 같은 조금의 위안이라도 시켜드리려 했으리라.

그래서 그는 더욱 더 마음을 굳게 먹고 남달리 노력하며 운수사업 등으로 큰돈을 벌고 저축을 하여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 대로 소리 소문 없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그게 지금 서울 종로구에 싱싱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형애 장학재단’이다.

종로구청에 기탁한 돈 70억을 비롯, 지금까지 약 6,000 여명의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지급된 장학기금은 총 300여억원, 그 장학금 혜택을 입고 자라난 청소년들 중에 교수, 박사, 판.검사, 의사만도 수백 명 이란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은혜의 인물 최형규 선생의 얼굴은 물론 이름조차 아무도 모른다. 유일하게 1975년 1월 17일자 ‘동아일보 휴지통’란에 실린 徐모씨(대학 등록금 수혜자)의 끈질긴 추적에서의 만남뿐이었다.

선생께서는 찾아가 큰절을 올리는 서 씨에게 “절대로 나 죽기 전에는 나에 관한 글도 쓰지 말고 소문도 내지 말아 달라”며 신신 당부를 하셨다. 아무튼 수많은 가난 속의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성공과 행복의 길로 인도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신 ‘故 최형규 선생’의 명복을 빌면서 지면 관계로 이 칼럼은 끝을 맺지만 고운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후손들 중에는 이런 훌륭하고 존경스런 인물들이 있음은 ‘경주崔씨’ 종친들에겐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반드시 50년전 억울하게 역사의 희생자로 사라진 당시 내무부장관 최인규씨의 옥중서신을 입수하여 ‘시대의 바람꽃… 그 형제이야기’ 책을 펴내어 국민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나는 최인규씨가 얼마나 억울한 희생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렇다. 그 책 속에는 ‘돈독’(金毒)병에 걸려 비틀거리는 전직 대통령 측근들과 주는 대로 받아먹고 엄청난 치부(致富)를 한, 썩은 돈 냄새가 풍기는 인사들을 향해 아주 특별한 ‘글’을 써낼 생각이다.

<작가, 본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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