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1966년 그곳에는 라디오를 조립하던 동남전기를 시작으로 7개의 재일교포 기업이 자리를 잡았다. 이들 8개사의 생산 품목은 비닐완구, 안경, 직물, 고무풍선 등이었으며 이들은 문을 연 첫해 고작 13만 달러를 수출했다. 그곳의 이름은 바로 구로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이다.

그로부터 반백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구로공단은 옛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 2012년 12월 말 현재 기업수 1만1,497개, 생산 9조7천억원, 수출 29억 달러, 고용 15만4천명 등 국내 최대 정보기술(IT)·벤처 집적지로 급성장했다. 이곳이 정말 그 옛날 구로공단이 맞나 싶을 정도다. 가히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구로디지털단지의 예와 같이 한국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자 한다면 산업단지를 둘러봐야 한다. 1960년대 1개에 불과했던 산업단지는 50년 만에 1,000개, 면적은 서울시의 2배로 늘어났다. 산업단지 입주기업은 지난해 7만5000개, 고용인원은 181만명, 총생산액은 985조원, 수출액은 4,120억 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그러나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지 50년 세월이 지나면서 경제성장의 거점 역할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주력업종이었던 경공업, 중공업의 고부가 가치화는 지체되는 반면, 경제성장을 견인할 첨단산업, 융·복합 산업, 지식기반산업의 산업단지 내 성장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청년층의 산업단지 취업 기피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대학생의 3분의 2가 산업단지 근무를 기피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노후화로 인한 사고가 늘며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9월 25일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2014년 6개를 시작으로 2017년까지 최대 25개의 산업단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의 핵심은 노후 산단을 전면 리모델링하여 첨단산업을 기반으로 한 창의·융합 공간으로 재편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대상 산단의 환경 개선 작업을 통해 불편하고 낡은 이미지를 벗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산단 내 공공시설과 개별 기업 시설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고 입주기업의 시설물 유지·보수 활동에 대한 컨설팅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최근 문제가 된 바 있는 시설노후화에 따른 위험요소도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물론 전체 1,000개의 산업단지 수에 비해 리모델링되는 25개 산단의 수가 적어 보인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정여건, 리모델링의 효과성 등을 고려할 때 모든 산업단지를 정부가 직접 리모델링할 수는 없다. 리모델링 성과를 조기에 창출하고 이러한 성공사례를 확산하는 것이 현 시점에선 가장 중요하다.

‘줄탁동기’라는 옛말이 있다. 병아리가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안에서 부리로 알벽을 쪼는 것뿐만 아니라, 어미닭이 바깥에서 알벽을 쪼아 알 깨는 것을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서로 협력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제는 산업단지의 새로운 개발이 아니라 유지관리가 더 중요한 시기이다. 다만, 유지관리도 때가 있다. 리모델링을 더 이상 늦춘다면 경제성장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 관리기관, 입주기업들이 협력해 이러한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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