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 국회의원(정의당)
최근 환경부로부터 화학물질 유통량 조사자료를 받아 분석해보니 조사에 참여한 기업 중 약 86%의 기업(16,547개 기업 중 14,225개 기업)이 화학물질정보를 비공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은 총 642개 기업 중 594개(92.5%) 기업이, 중소기업은 15,905개 기업 중 13,631개(85.7%) 기업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화학물질정보를 비공개한 기업을 광역단위로 살펴보면 경기도가 26.7%(3,793개)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서울시 11.8%(1,672개), 경남 11.8%(1,672개), 인천 7.9%(1,130개), 부산 7.0%(997개)를 각각 기록했다. 인구가 밀접한 도시지역에서 화학물질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비율이 더 높았다.
화학물질정보를 비공개한 업체를 시·군·구 단위로 보면, 경기도 안산시가 778개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인천시 남동구(514개), 경남 김해시(505개), 경기도 화성시(426개) 순이었다.
화학물질정보를 비공개한 업체를 업종별로 분석하면 비공개를 요청한 총 14,225개 기업 중 도매 및 상품중개업이 2,028개(14.3%)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제조업(의약품제외)이 1,887개(13.3%), 금속가공제품 제조업(기계 및 가구제외)이 1,510개(10.6%)로 확인됐다. 전자산업과 관련된 전자부품·컴퓨터 및 통신장비제조업은 650개(4.6%)였다.
문제는 또 있다. 화학물질정보를 비공개로 요청한 기업(사업장)과 주거지역 등과의 거리를 측정해본 결과, 이들 중 상당수가 초등학교·아파트 등에 매우 근접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S모바일디스플레이주식회사(용인시)의 경우 사업장과 아파트와의 거리가 불과 570m였고, H모비스(천안시)는 아파트와의 거리가 170m 밖에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거나 거주하는 지역에 인접한 화학물질 사용 공장의 화학물질정보가 공개되지 않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국민들은 더 큰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OECD가입과 동시에 ‘OECD 화학사고 예방 지침서’에 따라 화학사고에 대비했어야 한다. OECD 지침서는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위험설비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 정확하게 행동하기 위하여 화학물질정보를 주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고, 활용할 권리의 문제를 별도의 장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이유로 16년째 지침서는 법제화 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여수산단, 울산산단 등 주요 국가산업단지에서 크고 작은 화학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그리고 정확히 1년 전 구미4공단에서 불산누출사고가 발생했는데, 그간 철저한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부실한 사고대응으로 이어졌다.
화학물질 사고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화학물질정보가 지역주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장하면서도 지역주민들이 화학물질사고에 대응할 수 있도록 화학물질 종류와 예상피해범위 등이 공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OECD 화학사고 예방 지침서’에 따라 화학사고 등에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