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기술위원

지난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권혁면 기술위원의 ‘마르퀴즈 후즈 후 인더월드(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등재가 결정됐다.

‘마르퀴즈 후즈 후 인더월드’는 미국 인명정보기관인 ABI와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인 IBC와 함께 세계 3대 인명사전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매년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 각 분야의 세계적 인물 5만여명을 선정하여 프로필과 업적을 등재하는데, 권 의원의 이번 등재는 지난해 공단 연구원의 임경택 연구위원의 등재(2010년판)에 이어 국내 산업안전보건분야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지는 이번호 세이프티 인터뷰 코너의 주인공으로 권혁면 기술위원을 선정하고, 그와 화학사고 예방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이번 인명사전 등재는 그동안 기술위원님께서 화학사고 예방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셨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떠한 활동을 하셨는지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평소 화학공장 안전에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화학공장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근무해왔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공정안전관리제도가 도입되었던 1995년 공단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같은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화학사고 예방분야 활동은 국내·외 학술논문 투고 및 발표를 기본으로 하여 왔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화학공학회 및 안전학회 공정안전 부문 위원장 역할을 수행했고, OECD 화학사고예방 전문가 그룹에서 노동부와 함께 열심히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밖에 화공안전기술사회 부회장, 미국 안전협회 로버트 켐벨상 심사위원 등의 국내외 활동을 해왔는데, 이러한 점들이 이번에 ‘마르퀴즈 후즈 후 인터월드’에 등재된 것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Q. 우리나라 화학사고의 현 주소를 평가해주신다면?

그동안 여러 전문가 분들이 선진국들의 중대 산업사고 예방 기술을 국내에 접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많은 국가들이 우리나라에 PSM 경험을 발표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화학사고 예방분야는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공정안전관리제도 즉 PSM 제도가 도입됐던 1990년대에는 1년에 20건 이상의 대형 화학공장 사고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1년에 4~5건 발생하는 수준으로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EU의 화학사고 수준과 비교해 볼 때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안정화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Q. 지속적인 산업재해 예방활동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화학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OECD 화학사고 전문가 그룹회의에 제가 매년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너무나 부러운 것이 영국, 네덜란드, 캐나다 등에서는 1년간 중대 산업사고 발생이 한건도 없었다고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보다는 사고가 많이 줄었으나 ‘중대 산업사고 ZERO화’는 아직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화학사고 예방시스템을 이행하는 것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지난 15년간 화학사고 예방시스템이 화학공장에 많이 접목되긴 했으나 그 시스템의 실행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절차상의 미세한 누락과 BY-PASS 등이 아직까지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Q. 위와 관련하여 해결되어야할 선행 과제를 제시해 주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화학공장 사고는 발생 건수도 중요하지만, 한 번 발생하면 그 피해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발생한 멕시코만 원유시추시설 폭발 사고가 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재앙으로 표현될 만큼 엄청난 피해가 지금 현재까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 2005년에는 미국 BP 정유공장 폭발로 15명의 사망자와 180명의 부상자, 그리고 15억 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 이 회사는 사고 후 경쟁사에 비해 주가가 24%까지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일단 사고가 발생되면 재해 당사자인 근로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회사와 국가도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면 안전보건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문화가 하루빨리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업의 운영에서 안전보건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CEO의 안전에 대한 리더십에 있습니다.

2005년 영국의 번스필드 유류저장소에서 43명이 부상당한 화재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사고 후 200여명의 화학공장 CEO들이 모여 사고재발 방지 대책수립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했는데, 이때 나온 결론은 ‘경영진의 안전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는 필수적이며, 회사의 안전보건수준은 최고경영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연간 20여건의 사고발생을 4~5건으로 줄이는 역할은 제도의 뒷받침으로 가능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나머지 4~5건을 완전 ZERO화 시키는 것은 사고를 없애겠다는 사업장의 자율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CEO의 안전에 관한 실질적인 리더십과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Q. 화학사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4월까지의 산업재해는 지난해 보다 더욱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단기적인 처방은 산업안전보건을 잘 지키지 않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강력한 감독권을 발동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재해율 자체를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려면 중·장기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재해율이 1이라고 하면, 100인의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1년에 1건의 사고가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또 근로자가 10인이면 10년에 1건의 사고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요즈음 재해가 증가하는 서비스업과 같은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사고의 빈도가 낮아 실제 사고로부터 안전을 배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10년에 한번씩 사고가 나는 사업장에 일회성으로 방문하여 제공하는 기술지도 역시 효율성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85%를 차지하는 1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산업재해 감소’라는 대명제의 해결점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럼 10년에 한번 사고가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안전은 어떻게 하면 확보될 수 있을까요.

사업장이 안전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스스로 안전관리를 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사업주들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얘기입니다.

EU의 경우 위험성 평가제도라는 것을 20년 전에 도입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위험성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도입하여 회사의 재해율을 30%이상 줄인 적이 있습니다. 이를 고려해 볼 때 우리도 사업주 책임 아래 간단한 위험성 평가라도 도입하여 사업장의 위험을 스스로 관리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과연 140만명의 사업주를 정부의 힘만으로 직접 공략하여 안전에 대한 의식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방법 중 하나는 소규모 사업장을 회원으로 거느리고 있는 직능단체들을 활용해 사고예방 활동을 전개해나가는 것입니다.

최근 재해가 급등하는 음식업에서의 재해를 줄이기 위해서 한국음식업중앙회를 통해 회원사의 사업주 의식을 변화시키고, 사업장 스스로 위험을 찾아 제거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향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0년대 초 OECD회의에 가서 우리나라 중대 산업사고 발생현황을 발표했더니 각국 대표들이 의아하게 저를 쳐다보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저의 바람은 향후 OECD 회의 시 “올해 한국 PSM 사업장에서 사고가 한건도 없었다”라고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영국 HSE의 경험을 활용하여 우리나라 PSM 사업장을 대상으로 공정안전리더십 그룹을 구성하고 CEO의 리더십을 향상시키는 사업을 금년에 시작했습니다. 향후 이 사업이 정착되면 제 바람도 꼭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애쓰시는 안전관계자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0년 여수의 한 화학공장에서 여러명이 사망하고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었습니다.

당시 아침에만 해도 멀쩡했던 가장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유족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넋이 나간 듯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한 중학생의 모습은 아직도 제 눈에 선합니다. 이때부터 저는 ‘사고 때문에 근로자가 사망하는 것은 막아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안전보건관계자들이 근로자의 고귀한 생명을 지키는 보람되고 숭고한 일을 한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어떠한 일과도 차별되고 더욱 더 보람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안전협회장이 과거에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안전은 우리가 지켜야할 최고의 선(善)이자 행복이다” 안전보건관계자분들 모두 이 말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