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예방과장 | 서울강동소방서

2012년 6월 서대문소방서 북가좌119안전센터의 대기실, 갑자기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지령지가 나왔다.

‘은평구 갈현동 케이블 작업도중 감전사고’ 지령서 내용만으로도 요구조자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북가좌119안전센터에서 현장까지는 약 5km 정도로 거리가 꽤 있다. 은평소방서 구급대가 현장에서 가장 가깝지만 다른 곳에 출동을 나가있어 불가피하게 장거리 구조출동이 이뤄진 것이다. 구급대는 사이렌 소리를 최대로 높이며 신속하게 현장으로 달려갔다. 정체가 심한 도로를 헤치며 구급대는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현장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아휴, 저를 어쩌지, 사람이 타고 있어”라며 시민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요구조자의 비명소리가 내 발걸음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요구조자는 사다리차 끝에 달린 작업용 바스켓에 올라가 전선연결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체 일부분에 2만 볼트가 넘는 고압선로가 닿으면서 감전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단순히 감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스켓에도 불이 붙은 것이다. 결국 그는 감전에 이어 화마도 피하지 못한 것이다.

43세의 요구조자를 구급차에 옮기고 화상 전문 병원인 한강 성심병원으로 이송을 시작하면서 바쁘게 응급조치를 시작했다. 화상 부위가 너무나 광범위해 생리식염수를 환부에 다량으로 뿌려주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 요구조자가 의식을 잃을까봐 ‘어디가 아프세요’라며 이것저것을 계속해서 물어보았다.

이후에는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한 뒤 계속 환자의 상태를 파악해 나갔다. 그렇게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료진들은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만큼 요구조자의 상태가 심각했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난 후 나는 요구조자의 근황이 궁금해 병원에 전화를 해봤다. 간호사는 그가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고 얘기했다. 이 때문에 두 다리와 손가락 일부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많이 호전돼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전기원 노동자들이 사다리차로 작업하는 모습은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봇대에는 변압기는 물론이고 인터넷선 등 온갖 전선들이 뒤엉켜 있다. 사다리차에 올라가 다른 전선을 잘못 건드리거나 자칫 고압전선 작업에서 작은 실수만 해도 치명적인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공사를 할 때는 전기를 끊거나 접지하는 등의 안전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 하지만 안전수칙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에 위 사례와 같은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8년부터 2011년 6월까지 한전이 발주한 배전공사 현장에서는 무려 55명의 전기원 노동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사한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그 해결책 중에 하나는 바로 안전을 강조하는 것이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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