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 서울강동소방서 예방과장

안전불감증은 대형사고를 부른다. 2012년 9월 27일 오후 3시 43분 공장 저장탱크로 불산을 옮기던 중 탱크 상부에서 다량의 가스가 상공 20m~30m로 분출하면서 공장을 뒤덮었다. 경북 구미시에서 발생했던 불산가스 유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작업을 하던 근로자 5명이 숨졌다. 작업자들은 위험물을 취급하는데도 안전장구를 전혀 갖추지 않아 변을 당하였다.

사고가 난 공장에는 안전책임자가 한명도 없었다. 불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인지 불산중화제 같은 방제약품도 없었다. 직원의 119 신고가 전부였다.

구미시는 사고 발생 3시간 후에야 불산의 위험성을 알렸다. 이미 수백 명의 주민이 불산가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뒤였다.

또 유관기관의 협조체제도 원활하지 못했다. 군 화학대대는 지원요청에 불응하고, 대구지방환경청 구미사무소는 전화 불통, 국립환경과학원은 늦게 도착했다.

위기상황 대응 매뉴얼이 전체적으로 지켜지지 않은 것은 물론, 사고 대응에서 매뉴얼을 무시한 채 위기경보를 해제한 것도 큰 실수로 지적된다.

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을 보면 행정안전부와 환경부, 고용노동부, 지식경제부에 사고수습본부를 두고 모든 결정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부처 간 협의없이 독단적으로 위기단계를 해제했다.

불소가스는 광물을 녹일 정도로 강한 화학적 에너지를 갖고 있어 인체에 치명적이다. 스웨덴 화학자 카를 셀레는 변변한 실험기구도 없이 산소·질소부터 바륨·망간의 원소를 발견해냈다. 그러나 셀레는 1786년 마흔네 살에 연구실에서 죽었다.

그가 찾아낸 8개 원소 가운데 하나가 플루오린, 불소(弗素)다. 불산이 피나 세포조직에 들어가면 칼슘·마그네슘과 결합하여 물에 녹지 않는 화합물질로 변한다. 체내에 미세한 돌가루가 쌓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번 뼛속에 침투한 불소 화합물은 길게는 20년 정도 우리 몸에 남게된다는 보고도 있다.

필자는 1984년 인도 보팔 살충제공장에서 유독가스가 새어나와 2,800명이 죽고 20만명이 중독된 사건을 기억한다. 생존자 대부분이 실명, 호흡기 장애,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 이상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번 구미 사고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사후약방문이 될지라도 유해물질 안전시스템의 문제점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해화학물질 취급기관은 철저한 기초과학교육과 안전교육 등을 실시하고, 대피요령, 취급 관리지침 등을 마련해 놔야 한다. 관련기관에서 허가할 때에는 소방관서에 허가사항을 통보하는 것을 제도화하여 데이터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화학물질사고 피해범위 설정과 실시간 유해농도 변화 대응 등에 대한 정보도 미리 제공하고 공유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구미사고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는 유독물 취급업체가 주택가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말 그대로 화약고를 안고 살아갔던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환경이 구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인천 서구에는 140개 유독물 취급업체가 주택가 인근이나 도로변에 있다.

관할 행정기관은 관련 업체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안전·환경관리에 대한 일제 점검을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사고발생 시 인명 구조와 독성 중화작업, 잔류 오염도 조사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끔 철저히 준비해놓는 것도 필요하다.

근본적인 대책은 재난안전관리 체계의 정비다. 현재 석유화학단지의 재난안전관리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 산업안전보건법, 소방기본법 등 여러가지의 법에 따라 환경부와 지자체 그리고 소방서로 3원화돼 있다. 복잡한 행정체계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책임 있는 대처를 어렵게 한다.

위험물질에 대해 부처마다 제각각 매뉴얼로 대처하면 ‘컨트롤 타워’ 기능이 없어진다. 총괄하는 기능이 없다보니 매뉴얼이 있어도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재난에 대한 신속한 대처를 위해 산업안전, 재난안전 통합관리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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