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중 예방과장 | 서울 강동소방서

2011년 7월 20일 오후 3시 43분경 서울 천호동에 있는 건물이 리모델링 공사 중 무너졌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분진이 자욱했고, 바닥은 유리파편으로 어지러웠다. 조적벽으로 쌓은 건물이라 폭삭 주저앉았던 것이다.

구조대는 1층에서 하수관 철거 작업을 하던 인부 2명이 매몰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우선 매몰자 위치추적을 시도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음파탐지기를 이용하여 생존자 검색을 하던 중 미세한 느낌을 감지하고 부근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작은 소리에 집중 하던 중 ‘살려 달라’는 생존자 L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붕괴된 지 4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무너진 콘크리트 1층, 2층 바닥을 드러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중장비를 활용할 공간이 없을뿐더러 붕괴가 우려되어 기계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구조대원 24명은 떡시루처럼 겹쳐진 콘크리트 바닥사이로 한사람씩 돌아가며 들어가 망치와 소형 착암기로 시멘트벽을 파내며 장애물을 제거했다. 추가 붕괴위험이 있었지만 요구조자를 구조하겠다는 대원들의 열정을 말릴 수가 없었다.

2층 천장을 뚫고 난 뒤, 자정이 넘어서야 1층 천정을 뚫었다.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수직으로 2미터 가량 파내려갔을 때 생존자의 오른팔이 보였다. 좁은 공간이라 비교적 몸집이 작은 여자 구급대원이 들어갔다. 혈압을 체크하였더니 200/100이 측정됐다. 공간이 좁아 엉거주춤한 상태에서도 팔을 쭉 뻗어 겨우 수액을 투여할 수 있었다. L씨는 층간 콘크리트 더미(40cm)에 끼여 누운 상태였으며 두 다리는 콘크리트 보에 압착된 상태였다.

생존자의 음성을 듣고부터 10시간 작업이 진행 중인데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생존자가 누워 있는 아래쪽을 파내려 했지만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이 버티고 있었다. 에어백을 이용하여 보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콘크리트의 하중이 커 실패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에 민간건축구조철거 전문가가 현장에 출동했다. 그는 소형 착암기로 다리를 짓누르는 보를 10cm씩 잘라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철거현장에서 오랫동안 파괴 작업을 한 탓인지 그의 손놀림은 빨랐다. 구조대원이 잔해를 드러내고 한시간 이상 작업을 계속 진행했고, 결국 오전 6시경 보를 깎아 내어 왼쪽 다리를 빼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요구조자는 10분 후 의식을 잃었다. 구급대원과 의료진은 기관 내 삽관을 시행했다.

의료진의 노력에도 L씨는 심폐정지 상태에 빠졌다. 심폐정지는 무겁거나 압박하는 장애물이 치워 졌을 때 순환에 장애가 오는 상태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의료진이 오른쪽 다리를 절제해야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간신히 건물 잔해에서 끄집어낸 L씨의 몸은 이미 얼음장 같았다. 절제수술에도 피가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이미 많은 피를 흘렸다.

오전 6시 40분경 강동성심병원으로 이송하며 심폐소생술을 50여분간 시행하였으나 7시 43분경 과다한 출혈과 쇼크로 사망했다. 무려 15시간의 사투를 벌였지만 L씨는 가족들과 구급대원들의 희망을 뒤로한 채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40년이 지난 건물을 안전진단도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보수 공사를 진행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정답이 없는 건설현장의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낸 사고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구조 손길 앞에서도 소중한 생명이 꺼져갔던 이 사건을 통해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보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민간구조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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