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현 가천대학교 소방방재공학과 교수

대심도 지역 재난 예방 위한 제도 마련 시급

 


지난 1987년 우리나라의 소방방재 분야에서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국내 최초로 소방방재 학과가 개설된 것이다. 경원전문대(현재 가천대학교)에서 첫 발을 내딛은 소방안전관리과가 바로 그것이다.

이후 이 학과는 2002년 소방시스템과로 학과 명칭을 변경하고, 2007년에는 전기·소방공학부 소방방재공학전공이라는 이름 아래 4년제로 개편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학부에서 지금의 소방방재공학과로 새롭게 발돋움했다.

이처럼 다양한 변화를 겪었지만 이 학과의 목표는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소방학문 발전과 전문기술 인력 양성이라는 학과 설립 취지에 맞게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것이다. 본지는 학과가 만들어질 때부터 현재까지 소방방재 분야 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온 백동현 가천대학교 소방방재공학과 교수를 만나 소방안전문화의 발전방향과 안전에 대한 신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가천대학교 소방방재공학과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1987년 소방방재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학과를 개설한 것이 바로 현재의 가천대학교 소방방재공학과입니다. 학과 설립에 따라 그동안 전기, 화공 등의 학문에 산재해 있던 소방안전을 집약해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지요. 실로 소방학문과 소방산업 발전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저희 과에서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기술인을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론과 실험연구 교육을 철저하게 병행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전공 영역을 유기적으로 통합한 교육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있습니다. 즉 저희 학과에서는 학생들이 졸업 후에 빠르게 현장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Q. 우리나라 소방시설의 현 실태를 짚어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소방시설은 대체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다고 봅니다. 또 각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유지관리 시스템도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IT기술의 발달과 함께 소방방재 기술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화재·폭발 사고의 예방 혹은 피해를 줄이기 위한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예를 들어 아파트(주상복합 등), 다중이용시설, 위험물시설 등은 그 어떤 곳보다 소방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조그만 사고로도 대형 인명·재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에 각 시설별로 소방시설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인력과 시간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래서 저는 유비쿼터스 기술시대에 맞게 무선화재탐지시스템을 도입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빈틈없는 소방안전관리가 가능해 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 또는 지자체 차원에서의 통합적인 관리도 가능해 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울러 피난 유도등을 11층 이상에만 설치토록 하고 있는 관련법의 개정도 필요합니다. 1층을 비롯한 전체 층에 피난 유도등이 구비돼야 하는 것입니다. 화재 등 각종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층이라고 안전할리는 없기 때문이지요.

또한 각종 화재·폭발 위험물의 경우 보관 및 사용에 따른 규정은 있으나 이동할 때에 대한 관련 규정이 없는 것도 보완해야 합니다. 교통사고 등으로 인해 피해가 날 가능성이 큰데도 말입니다. 운반자에 대해 철저히 안전교육을 진행하는 가운데 위험물의 이동 시 관련 기관이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Q. 고위험 시설에서의 화재·폭발 사고 예방을 위해 시급히 수립·시행돼야 하는 정책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 생활 주변에는 초고층건축물, 석유·화학공장 등 화재·폭발 사고에 취약한 시설들이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에 따라 관련 법이 제정돼 있고 또 상황에 맞게 정비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초고층 및 지하연계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심도(大深度) 지역에 대한 관련 법의 정비는 요원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지하철과 광역철도의 대심도 지역은 300여개소에 달합니다. 30m이상의 대심도 지역도 30여개소에 이를 정도입니다.

만약 이 정도 깊이의 지하에서 재해가 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또 소방시설이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다면 어떨까요.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엄청난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즉 대심도 특성에 따른 안전하고 합리적인 방재기준이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NFPA 130)과 영국(VSU-B31)에서는 피난안전구역의 설치를 의무적으로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안전을 위해 대심도 지역에 대한 설계지침, 성능기준, 제연품질기준, 공조설비 기준 등을 하루 빨리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Q. 안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전은 곧 신념입니다. 안전에 대한 철두철미한 신념이 없다면 확보되지 않는 것이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습니다. 한국전쟁과 경제발전 시기 등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안전보다는 효과·성과를 우선시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건설현장의 경우 ‘이 정도 현장이면 이 정도 사고는 어쩔 수 없다’라는 인식이 생겼을 정도니까요.

즉 과정이 어떻든 간에 목표에 도달하는 것만을 최고로 여긴 것입니다. 물론 이런 잔재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경영진의 경우 안전에 소요되는 예산을 투자가 아닌 단순한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근로자들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등 안전을 등한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 눈에 보이는 보잘 것 없는 성과와 한 때의 편안함만을 생각한 결과입니다. 이제까지 속도 위주로 정책결정이나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앞으로는 속도와 더불어 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안전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투자를 바탕으로 인간존중을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Q. 산업현장의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에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근 각종 화재·폭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듯이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즉 근본적인 대책이 시행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저는 그 원인으로 법 집행이 엄정하지 않았던 것을 꼽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실수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관대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면에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안전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안전은 곧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지요.

일단은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안전의식을 제고시킨 후에 자율책을 시행해야 합니다. 책임과 그에 따른 보상을 적절히 구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사회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각계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전사고가 날 때마다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뿐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학계 및 시민단체가 바로 이런 사회분위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각종 안전정책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을 하는 가운데 안전의식이 전 사회적으로 제고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편 정부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때 그때마다 잣대를 달리할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 안전질서를 확립해야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탕이 돼야만 모든 국민들의 안전의식이 높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근로자 여러분들은 불안전한 행동이나 잠깐의 방심이 얼마나 큰 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인지해야 합니다. 또한 작게는 가정, 직장이 안전해야 나라도 안전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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