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계완 | 안전보건공단 국제협력팀장

인간은 특정한 문화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후 성장과정에서 문화를 몸에 익힌다. 즉 문화는 비유전적인 성격을 가진다. 또 문화는 독단적이지 않고 구성원 간에 공유되는 것이며 학습을 통하여 축적되고 변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의 속성을 이해하면서 재해예방에 접근해나가는 것은 산업재해예방 전략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누출사고와 관련한 국제원자력안전자문단(INSAG)의 보고서에서는 안전문화라는 용어가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됐다. 여기에서 안전문화는 ‘조직과 개인의 자세, 품성이 결집된 것으로 모든 개인의 헌신과 책임이 요구되는 것’이라고 정의됐다.

국내의 경우 1995년 6월 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안전문화에 대한 정부 주도의 접근이 시도됐다. 1996년 4월부터는 매월 4일을 ‘안전점검의 날’로 지정, 안전문화 운동을 전개하여 국민의 안전의식을 많이 높이게 됐다.

외국의 경우 1990년대부터 스콧 겔러(E. Scott Geller), 쿠퍼(Cooper M. D) 등이 안전문화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됐다. 재해예방의 수단으로 기술적 예방(안전보건법, 기술기준, 점검 등), 시스템 예방(안전보건경영시스템, 관리적 프로그램 등)에 한계를 느낀 안전보건전문가들이 문화적 접근(Cultural Approach)을 근본적인 대안으로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안전문화에 바탕을 두고 함축적으로 생겨난 것이 있다. 바로 예방문화다. 예방문화는 ILO협약 187(국가안전보건증진체제, 2006년)에 처음으로 사용됐다.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것이 근로자의 권리라는 전제 아래, ‘노사정 참여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추진원리’로 인정된 것이다. 정식 용어는 ‘국가적 안전보건 예방문화’이나 일반적으로는 ‘예방문화’로 줄여 사용한다.

예방문화는 산업안전보건 서울선언에 중요한 재해예방 원리로서 언급되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서울선언정신의 실현을 위해 안전보건공단은 지난해 9월 국제사회보장협회(ISSA)에 예방문화위원회(Section for a Culture of Prevention)를 설립하고 의장기관이 됐다. 목적은 전세계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예방문화(Prevention Culture)를 확산하는데 있다.

아직은 예방문화에 관련된 연구보고서가 많지 않으나, 향후 안전보건분야의 문화적 변화를 유도하는 재해예방 수단으로서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위와 같이 안전문화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사회심리학적 개념을 담고 있다. 또 효과적인 안전문화 증진을 위해서 경영원리(Management principle)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 국가적 접근이 다를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예방문화는 사회에 중점을 둔 개념이다. 노·사·정의 참여를 바탕으로 사회 각 주체의 참여를 독려한다. 안전보건분야에 좀 더 실용적이며, 예방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안전보건분야에서는 안전문화라는 용어가 예방문화라는 용어로 대체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위험은 단시간에 제거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조직이나 지역의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물며 국가적으로 예방문화가 충만한 사회를 만들기에는 수십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먼 길이라도 지금부터 변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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