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환 | 에너지관리공단 부이사장

지난 5월 2일 낮 최고기온이 29도까지 올랐고, 전력예비율은 7%대까지 떨어졌다. 기후변화로 인해 봄이 짧아지고 초여름 기습더위가 급습하면서, 여름철 전력피크를 대비한 발전기의 예방정비 조차도 마음놓고 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봄·가을도 전력수급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산업현장에 큰 피해를 줬던 9·15 정전도 설마하던 찰나에 늦더위의 기습공격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다가올 여름이 더욱 걱정이다. 특히 원전의 안전기준이 강화되어 정비에 들어간 원전이 많은 것이 이같은 우려를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원전들이 올여름 정상가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러잖아도 어려운 전력수급에 더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정부는 물론 산업현장, 더 나아가 온 국민이 제5의 에너지원으로 불리는 ‘에너지절약’을 실천하는 것이다.

여름철 전기부족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냉방기기 사용의 급증이다. 한여름 의류 상점에 들어가 보면 벌써 가을 옷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점원들이 긴팔의 옷을 입은 채 과도한 냉방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어두는 ‘냉방 호객 행위’가 횡횡하다. 에어컨을 켜둔 상태에서 매장 문을 열어두게 되면 절반에 가까운 냉방에너지가 외부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는 곧 여름철 전력 낭비의 주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정부는 올여름 전력수급대책 중 하나로 출입문을 개방한 채 냉방기를 가동하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예년보다 한 달 가량 빠른 6월 1일부터 9월 21일까지를 ‘하계 전력수급 비상대책 기간’으로 설정하고, 계도기간을 거쳐 대형건물은 냉방온도를 26도, 공공기관은 28도로 제한해나갈 방침이다. 여름철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 정부가 예년보다 더 강력하게 나선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맞춰 산업현장, 그리고 가정에서도 ‘나 하나쯤이야…’하는 마음가짐을 버리고 전기절약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냉방전력사용이 집중되는 오후2시~5시에는 가급적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고, 전력 소모량이 높은 가전제품의 사용을 피해야 한다. 사용하지 않는 전기기기 및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뽑아두는 것도 효과적인 전기절약 방안이 될 수 있다. 전기 흡혈귀라고 불리는 대기전력은 가정 내에서만도 약 6%의 전력 손실을 일으킨다. 불요불급한 전기의 사용을 줄이는 생활 속 작은 습관만으로도 전기절약을 실천할 수 있다.

최근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99.6%의 응답자가 에너지절약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반면에 66.3%의 응답자만이 에너지절약을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절약에 대한 ‘지행일치’가 아직까지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진리는 이론에서 찾는데 있지 않으며, 오히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있다”는 퇴계 이황 선생이 말이 있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되는 전기절약 습관이 전기절약의 진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절약은 귀찮고 불편하다는 인식을 전국민이버린다면 올 여름 전력부족 위기는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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