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 소방방재청장

지난해 일어난 동(東)일본 대지진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해안에 설치된 방벽을 따라 넘어오는 검은 해일에 일본인들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했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에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모두 2만여명의 주민이 사망 또는 실종됐고, 33만명이 피난을 떠났으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7%까지 떨어졌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러한 일이 ‘안전 신화(神話)’를 자부해온 일본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러한 일이 한반도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 유쾌한 질문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진의 안전지대라고 인식돼 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국내에서 지진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30년간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300여회 발생했고, 매년 평균 50여회의 지진이 발생한다. 이제는 우리도 예기치 않은 지진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대형 지진이 발생하면 단순히 건물이 몇 채 붕괴되고 사람이 몇 명 숨지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진으로 발생한 화재가 2차적 피해를 야기하고 손상된 도로·철도·전기·가스 등으로 인해 사회 전체 시스템이 마비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시설물 내진설계는 1960년대에 원자력발전소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이후 댐을 포함해 현재는 거의 모든 주요 시설물에 내진설계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건축물의 경우에도 1988년에 6층 이상 또는 10만㎡ 이상에 대해 내진설계가 도입됐다. 이후 단계적으로 강화돼 최근에는 1~2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물에 내진설계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반면 내진설계 도입 이전의 시설물은 아직까지 지진재해의 사각지대(死角地帶)로 남아 있다. 이는 전체 시설물의 63%를 차지한다. 정부는 2009년부터 ‘지진재해대책법’을 근간으로 이러한 지진재해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지난해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로 시설물 내진 보강 대책이 강화돼 매년 4월 말쯤에는 공공기관의 시설물 내진 보강 실적이 국민에게 공시된다. 또한 민간 건축물에 대한 내진 보강을 활성화하기 위해 재산세나 취득세와 같은 세금을 감면해주는 방안도 마련했다. 아울러 동해안에 발생할 수 있는 지진해일에 대비, 우선 43개 지진해일지구에 대해 지진발생 시 실시간으로 침수 예상지역을 산정해 알려주는 지진해일 대응체계를 올해 말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원전에 대해서는 추가로 해안 방벽을 쌓고 발전기에 방수문을 설치하는 등 안전대책을 수립해 시행 중이다. 또 전 국민이 연간 최소 1회 이상 지진훈련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안전한국훈련’과 ‘민방위훈련’을 적극적으로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같은 대책을 추진함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국민의 지진 방재(地震防災)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그 실행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 대표적으로 공공기관에서조차 지진 방재와 관련한 예산 집행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진 방재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공공(公共)뿐만 아니라 민간(民間)까지도 아우르는 범국가적 협조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국가적 위상을 고려할 때 이제는 ‘예기치 않은 일’에 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