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남 총장 | 노사발전재단

지난 연말 공장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던 고3학생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학생이 11월 한 달 동안 연장근무만 100시간을 한 가운데, 일주일 간격으로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번갈아 하면서 낮과 밤이 뒤바뀌는 불규칙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은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에 심히 위협적인 존재다. 산업재해가 늘어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예방의학교실의 연구에 따르면 1일 11시간 이상 근무시 심근경색(소위 심장마비) 발생 위험이 약 3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주·야간 교대근무를 발암추정요인(Group 2A)로 분류하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장시간 노동은 근로자들의 피로 누적, 능력 개발 부족 등을 야기하면서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평균근로시간은 2116시간에 이른다. 이는 OECD 전체 국가의 평균 근로시간인 1749시간에 비해 367시간이나 더 긴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0개 국가 중 28위로 미국의 43.8%, 일본의 65.7% 수준이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 노동량은 많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노동생산성은 낮은 것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피로가 누적된 근로자가 과연 가정에 돌아가서 어떤 행동을 할까? 가정생활에 소홀하고, 아내·자녀들과 대화할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교폭력, 청소년문제의 근원은 가정에서 제대로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않은데 있다. 그렇다고 본다면 장시간 근로가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이란 인간의 체력을 바탕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주간 법정 기준근로시간은 48시간, 44시간, 40시간 등 지속적으로 단축되어 왔지만 1일 기준 근로시간은 8시간으로 변함이 없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1일 8시간 이상 노동하면 체력이 누증적으로 소모되고 피로가 급증한다는 것이 노동과학적 판단이다. 8시간이상 노동에 대해서 통상임금의 50%할증으로 보상해주도록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이다.

노동력의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고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1일 8시간 노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근래 우리 사회 가장 큰 이슈이자, 국정의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일자리문제이다. 연장근로나 휴일근로 등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일자리를 자연스럽게 늘려나갈 수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장시간 근로사업장 500여개를 적발해 이를 시정토록 하는 과정에서 근로자 5천여명이 신규 채용됐다고 한다.

또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법정근로시간 한도를 제대로 지키기만 해도 4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근로자들의 축제일인 5월 1일 메이데이는 1886년 하루 8시간 노동을 보장해 달라는 미국 노동자들의 시위에서 비롯되었다. 근로자의 건강과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탄생한 노동운동의 결실인 것이다.

웰빙의 시대,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다. 무한경쟁의 글로벌시대에서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한 경쟁력 강화야말로 기업생존과 노사공생의 지름길이다.

현실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장시간노동 개선의 어려움을 주장하는 내용도 분명 타당성이 있다. 당장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하지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장시간노동 개선은 노동운동의 첫 번째 과제이자, 인간행복의 첫 번째 과제이다. 바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행복하고 경쟁력있는 일터를 만들어나가는 출발점이다. 장시간노동문제를 해결해기 위해 노사가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