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재활원 김종배 재활보조기술연구과장

필자는 어린 시절 ‘철인 28호’라는 만화를 즐겨봤다. 필자뿐만 아니라 아톰, 로보트 태권 브이 등 로봇을 테마로 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그간 많은 어린이들의 동심을 사로잡아왔다.

이렇게 로봇이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로봇이 인간의 육체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는 무한한 힘을 가진 초월적 존재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상 속에서 존재했던 로봇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역사 속에 실존하는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 로봇은 주로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나 사람이 일하기 힘든 분야에서 사람을 대체하여 일을 하는 역할을 했다. 산업용 로봇이나 무인탐사로봇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이른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거기에다 군사용 로봇, 수술로봇, 청소로봇, 학습로봇 등 로봇의 종류도 훨씬 다양해졌다.

요즘 등장하고 있는 로봇과 초기 로봇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공생하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장애인과 노약자의 재활치료나 일상생활을 돕는 재활보조로봇이다.

재활보조로봇의 등장이 본격화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쯤이다. 당시 스위스 Hocoma사는 ‘Locomat’이라는 하지운동 재활로봇을 선보였다. 이 로봇은 재활치료에 획기적인 장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Locomat’이 나오기 전에도 상지운동 재활로봇과 휠체어부착형 로봇팔 등이 상품화 돼 판매되고 있었다. 하지만 ‘Locomat’은 이들 로봇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보여줬다. 하반신 마비로 다리를 조금도 못 움직이는 사람이 이 장치를 다리에 부착하면 트레드밀(동력에 의하여 일정 방향으로 이동하는 벨트) 위에서 실제로 걷는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실로 걷지 못하는 하반신마비 및 편마비 환자들에게는 획기적인 제품인 것이다.

필자도 4년 전 미국 대학교에 있을 때 ‘Locomat’을 타본 적이 있다. 사고로 마비된 지 23년 만에 걷는 걸음이 너무 감격적이고 기분이 좋았다. 걷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첨부해 ‘김종배 드디어 걷다!’라는 제목으로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을 정도였다.

‘Locomat’을 통해 걷는다는 것은 다리에 외골격로봇을 부착시키고 모터의 힘으로 각 관절을 움직여 마비된 다리가 걷게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내가 걷는 것이 아니고 로봇의 모터에 의하여 걸어지는 것이다. 즉 이 재활로봇으로 걷는 운동을 한다고 해서 필자처럼 완전히 마비된 척수손상장애인이 다시 다리의 기능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비되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걷는 운동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 필자의 경우와 같이 완전마비로 장애가 고착화된 사람은 걷는 운동을 통하여 마비된 다리의 근육 퇴화, 골밀도 약화 등의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또 장운동의 활성화, 혈액순환 개선 등의 여러 가지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뇌졸중이나 뇌손상에 의한 편마비환자나 불완전마비 척수손상환자에게는 걷는 운동이 다리 운동기능의 회복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운동 재활로봇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시장의 부응이 크고 현재 공학기술이 매운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로봇기술에 의하여 길거리를 걸어 다닐 날이 더욱 가까워졌음을 예측하게 된다.

실제로 3~4년 전 이스라엘의 모 회사가 ‘ReWalk’라는 하지 외골격 로봇을 출시하면서 한 하반신마비 척수장애인으로 하여금 이 로봇을 착용하고 걷게 끔 한 적이 있었고, 작년에는 미국의 Ekso Bionics사가 ‘ReWalk’보다 한 단계 발전된 ‘eLeg’라는 하지보행 외골격로봇을 선보인 바 있다. 필자의 경우 최근 일본의 Hujita Health University를 방문, ‘eLeg’ 보다 안정된 형태의 ‘WPAL’이라는 하지보행 외골격로봇 시스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왔다.

이같은 재활로봇 관련 연구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만해도 목 이하로 전신이 마비된 사람이 식사를 혼자 할 수 있게 하는 한국형 식사보조로봇의 개발에 2년 전 착수하여 현재 1차, 2차, 3차 시제품을 완성하고, 올해 상용화버전을 개발 중에 있다. 더불어 재활보조로봇의 시장 활성화를 위한 재활로봇시범사업과 실용적 재활로봇의 개발을 위한 재활로봇중개연구센터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옛날 신기한 모습으로 우리의 동심을 사로잡았던 로봇이 이제 우리 장애인과 노약자들의 든든한 치료사 및 도우미 역할을 할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