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보호 장구를 해주지 않는다면 양육권 박탈”

몇 해전 미국 법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색적인 판결이 나왔다. 어린이 안전을 제대로 챙기지 않은 부모에게 한시적으로 양육권을 박탈한 것이다.

전후사정은 이렇다. 미국의 한 어머니는 5세 자녀를 조수석에 앉히면서 보호장구를 전혀 착용시키지 않았다. 문제는 그렇게 차를 타고 가다가 추돌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나마 안전띠를 맨 어머니는 아무런 부상을 당하지 않았지만 조수석에 앉아있던 어린 자녀는 크게 다쳤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미국의 어린이 안전 시민단체인 Safe Kids Campaign 회원들은 “부주의한 어머니에게 살인죄를 적용, 구속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부모로서 너무나 당연한 어린이 보호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어린 생명이 위협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판사는 “어머니의 양육권을 1주일간 박탈하겠습니다. 당신이 친모이기 때문에 1주일이지 만약 계모였다면 3개월 이상 양육권을 박탈했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은 사회적으로 어린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뿌리깊게 심어져 있고, 각종 법·제도 역시 이에 발맞춰 실현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수치를 통해서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2009년 기준으로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1.4명으로 우리나라(2.9명)에 비해 절반수준 정도다.

참고로 미국의 어린이 교통사고 특징은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보행 중 사망보다는 승차 중 사망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승차 중 어린이 사고예방을 위해 보호 장구착용의 중요성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어린이 보호장구 착용률은 90%를 상회할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린이 보호 장구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보호 장구 착용률은 간신히 10%를 넘고 있다.

더욱이 어린 자녀를 조수석에 안고 타는 부모들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독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를 조수석에 안고 탔다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안고 있는 사람이 받는 충격은 70%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어린 자녀가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어린이를 안고 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은 지금부터라도 보호장구 착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신속히 취해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도 교통안전선진국에 보다 빨리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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