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훈 팀장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제주지도원

인류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로니아 왕국의 제6대 왕인 함무라비(BC 1724~1682년)가 설형문자로 제정한 법전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주의로 잘 알려진 이 법전은 1901년 프랑스의 모르강(De Morgan)에 의해 이집트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총 282조의 조문 중에서 건축주의 안전에 관한 사항을 보면 현대를 앞서가는 느낌이 있어서 흥미를 끈다.

“건축자의 잘못으로 집이 붕괴되면, 건축자는 자신의 비용으로 그 집을 재건하여야 한다”, “건축 요건과 합치하지 않아 벽이 무너지면, 건축자는 자신의 비용으로 그 벽을 보강해야 한다” 등 건축자의 안전에 관한 책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신라 진평왕 13년(591년) 남산신성비에 건축실명제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가 전국 각지의 인력을 징발해 경주 남산에 있던 기존의 남산성을 새로 만들면서 성벽 일정 구간마다 남긴 기록인데, 성벽 축조기록 내용은 물론 건립연월일과 서약문, 공사에 참여한 사람, 작업분단의 축성거리 등이 명시되어 있다.

비문에는 신해년(辛亥年)에 남산신성을 쌓았으며, 쌓은 뒤 3년 이내에 성이 붕괴되면 벌을 받을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辛亥年二月六日南山新城作節如法以作後三年崩破者罪敎事爲聞敎令誓事).

세종대왕의 업적은 재론할 필요가 없이 위대하다. 특히 대왕의 愛民 정신은 동서고금의 표본으로, 세종실록에는 이러한 애민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426년 대왕은 노비가 애를 낳고 곧바로 일을 하는 것을 측은히 여겨 형지에 전지하기를 “서울과 지방의 관가 여종은 아이를 낳은 후에 휴가 100일을 주는 것을 형식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4년 후인 1430년 지방 순찰 중 농민 아낙이 논두렁에서 출산하는 광경을 보고 다시 대언(代言) 등에게 이르기를 “일찍이 더하여 산후 100일 휴가를 주게 하였다. 그러나 산기에 임박하여 입욕하다가 몸을 지치면 미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 만약 산달에 임하면 1달간 역을 면제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 하여 산전휴가 30일을 주게 하였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형조에 하교하기를 “서울과 비장의 여종이 아이를 배어 산달에 임한 경우와 산후 100일 안에는 사역(使役)하지 말도록 일찍이 법을 세웠다. 그러나 그 남편에게는 전혀 휴가를 주지 아니하고 그전대로 부리게 하여 산모를 구호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사역인(使役人)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부리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작금에 이르러 남편에게 출산휴가를 주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전에 있어서도 인간존중 사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섣달 한겨울에 얼음을 채취하는 것을 벌빙(伐氷)이라 한다. 벌빙시에는 보통 70*100*60㎝ 정도의 크기로 얼음을 잘라 빙고로 보냈다. 그런데 벌빙은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엄동설한에 강가에서 유숙하면서 얼음이 얼기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얼어죽거나 벌빙 중에 빠져 죽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겨울만 되면 한강변에 사는 백성 중 벌빙부역을 피해 도망가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벌빙부역으로 생과부가 된다는 ‘빙고청상(氷庫靑孀)’이란 말의 유래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대왕은 세종13년 한강에서 얼음을 뜨는 작업(伐氷)시 빙부가 빠지지 않도록 안전을 위해 동아줄을 작업장에 종횡으로 매어놓고 허리에도 매어 작업토록 했다. 오늘날의 안전대를 착용토록 한 것이다. “인명존중을 위한 조상의 얼”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세종대왕은 안전보건에 있어서도 대왕이었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한국의 대표 실학자로 실생활에 다양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정조는 정약용에게 중국에서 가져온 책을 주면서 수원성을 10년 안에 축조할 것을 명하였다. 고심하던 정약용은 거중기 등 획기적인 기구를 발명하여 10년을 2년 9개월로 앞당겨 성을 축조하였다. 무려 40,000냥, 현재 시세로 따지면 4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도 얻었다. 정약용은 실로 생산성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임진년 벽두에 선현의 안전보건에 대한 지혜를 거울삼아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종에 있어서 구체적인 예방대책이 반드시 실현되길 기대한다. 또 좌고우면(左顧右眄)하여 그동안 미처 손길이 닿지 못했던 분야에서도 꼼꼼한 재해감소의 기운이 용틀임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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