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법과 제도 집행에 일관성 필요

지난 1990년대 중반 도입되어 10여년간 이어져온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 사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안전보건관리자의 역할을 보완해주는 한편, 사업주와 관리자, 그리고 근로자들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 후 1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가 예상보다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안전관리 자체의 활동은 물론, 협의회 활동도 활성화되지 못하면서 사업장 명예직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자율안전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역할도 갈수록 강조되어야 함에도 이렇게 제도 자체가 답보상태에 놓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협의회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안산지역협의회에서 최근까지 의장을 지냈던 박태순 안산시시민소통위원회 전문위원을 찾아가 그에 대한 답을 들어봤다.

 


Q. 위원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안산지역협의회에서 올해 중반까지 의장직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안산시시민소통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산시시민소통위원회는 시민의 의견을 들어서 그 의견을 시정에 반영시키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즉, 행정의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소비자의 의견을 공급자에게 전해 소비자가 원하는 행정이 공급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안전에 대해서도 각계 간의 소통이 많이 필요합니다. 제가 20여년간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사업장의 안전을 위해 일해 온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통위원회 전문위원으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Q.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안산지역협의회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그동안 협의회 의장으로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의 활성화, 위촉된 사업장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의 역량 강화, 재해예방기관과의 네트워크 활성화, 명예산업안전감독관간의 정보교류 등에 중점을 두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산지역 산업재해예방 유관기관과의 공조체계를 강화하면서, 안산시의 산재예방 활동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안산시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안산지역협의회에 재해예방 사업비를 지원해 여러사업들을 할 수 있게끔 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Q.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가 생각보다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는 재해예방활동에 근로자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1995년에 도입됐습니다. 사업장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하여금 유해위험요소를 사전에 발굴하게 함으로써 재해를 예방하겠다는 것으로, 취지는 그 어떤 제도보다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명예산업안전관독관 제도가 활성화 되지 못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그 중 핵심포인트로 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법령에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위촉할 수 있다”로 명시되면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위촉이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한정된 것이지요. 때문에 사업장 내 위촉과 활동에 대한 구속력이 전혀 갖춰지지 못했고, 지역협의회의 구성 및 운영 또한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제도 도입 취지와 목적을 묵과한 정책들이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안전보건 대행기관 관계자들이 사업장을 방문해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몇 명이나 만나 보았을까요.

위촉대상 사업장(100인 이상 사업장, 위험이 존재한 50인 이상 사업장) 중 아마도 99% 이상의 사업장에서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사업장 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취지는 좋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해 재해예방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Q. 그렇다면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가 활성화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법령상에 명시된 “위촉할 수 있다”를 “위촉하여야 한다”로 개선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또 사업장내 안전보건 점검 시 반드시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을 입회토록 하는 가운데, 그 점검 결과에 대한 확인도 필히 하게끔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의 활동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제도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고용부에서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의 활동들을 사실상 방치해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의 활동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야 하고, 이를 통해 지역협의회 등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나가면서 제도 활성화를 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안전관리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타 사업장간의 정보교류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이 지역협의회 활동을 한다고 하면, 사업장에서 이를 보장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Q. 명예산업안전감독관도 궁극적으로는 자율적인 안전관리를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율안전관리 보다는 정부의 제재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율이라고 하니까 생각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2004년 노조간부들과 각 작업부서를 돌며 안전보건에 문제가 되는 사항들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정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약 300곳의 문제를 찾을 수 있었고, 이들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회사에 제출해 장단기 개선 계획을 세우자고 했었습니다.

처음에 회사 측에서는 회사를 망하게 할 작정이냐며 크게 반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취지와 중요성을 잘 설명하고, 일단 300여개의 문제점 중 회사가 비용을 들여야 할 부분 외에 작업장 내에서 고칠 수 있는 부분들을 우선적으로 개선시켜나갔습니다. 이렇게 활동이 진행되면서 개선의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회사 측도 자연스럽게 개선활동에 나서더군요.

이 사례는 노사가 책임있게 위험요소를 개선해나갔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조간부가 자발적으로 개선에 참여하여 큰 효과를 얻은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위의 사례처럼 노사가 위험요소의 개선을 책임있게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입니다. 노사 간의 신뢰성과 경험이 부족해 현실에서는 “자율은 안해도 그만인데, 왜 하느냐”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입니다.

자율적인 안전관리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감안해 산업안전보건 문화를 확산시키려면 노사가 전문기관의 의견을 들어 점검 등의 활동을 자율적으로 하게 하는 가운데, 도출된 문제점에 대한 개선에는 강력한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점검 등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해주는 대신, 그 문제점에 대한 신고와 개선에는 강제성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점이 개선될 때까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서 제외하여 사업주의 부담을 완화시키는 방안도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Q. 우리나라 산업안전의 현실을 냉정이 짚어주신다면?

정부의 산업안전보건 정책은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재해가 줄지 않는 이유는 그 제도와 정책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정부의 우수한 제도와 정책이 현장에 적용되지 못했을까요?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정책을 집행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부족했었다는 것이지요. 제도 도입 초기에는 ‘도깨비방망이’라도 꺼낼 듯 강력한 집행의지를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의지가 금세 사그라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것입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습니다. 안전보건이 구호가 아닌 실천이 되도록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있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정부의 인력과 인프라만으로 부족하다면, 민간전문기관 및 단체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최근 산업안전보건 기능의 지방 이양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사업장 재해예방활동을 20년 이상 해온 터라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면 산업안전보건기능이 지자체로 이관된다면 업무 집행에 있어 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따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으로는 모든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사업장의 안전을 산업안전으로만 국한시켜야 하는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재해 예방은 사업장 노사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산업안전보건은 범국민적으로 인식을 향상시키고, 그에 맞는 재해예방 문화를 형성시켜나갈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생활안전과 산업안전은 같은 안전이면서도 동전의 양면처럼 법과 활동이 따로 놀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의 생활안전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가정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잡고, 그 습관이 사업장 내 안전활동으로 이어져야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업무이관과 무관하게 도시 이미지 향상 등 필요에 따라 ‘안전도시’를 선언하고 업무부서 조직을 개편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 상 강제규정인 ‘감독’ 등과 같은 전적인 업무 이관은 어렵다 하더라도 생활안전과 산업안전보건이 결합하는 ‘안전문화’ 정도의 업무는 행정안전부로 이관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Q. 지자체의 역할 강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가 안전하려면 안전과 관련한 시민문화와 국민문화 등이 우선적으로 형성돼야 합니다. 검색해보니깐 시민의 안전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곳이 대구라고 합니다.

2000년대 초 발생한 지하철화재를 계기로 시 차원에서 안전문화 확산에 적극 나섰고, 그 결과 현재에는 ‘가장 안전에 신경쓰는 도시’, 또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높은 도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지역의 안전을 위해서는 지자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산업안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산지역에 반월, 시화공단이 있듯이 공업단지는 전국 곳곳에 모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공단의 근로자도 결국은 시민입니다.

다시 말해 각 지자체가 지역 사업장의 안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결국 그 지역의 시민, 나아가 지역 전반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각 지자체들이 노사주체 및 안전보건단체들과 함께 산업안전 분야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Q.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전보건 활동은 나 자신과 동료를 위한 활동으로서 열 번,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제도가 미비한 점은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역할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안전활동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안전보건관련 담당감독관이 누구이고, 작업환경측정, 건강검진기관, 안전보건대행기관이 어디인지를 파악해 둔 것만으로도 안전활동의 토대가 갖춰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뭇거리지 마시고, 사업장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즉시 실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안전과 관련해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이 세상 모든 행위들은 최종적으로 사람을 위한 일들입니다. 쓸모 있고 멋진 제품, 부가가치가 있는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 그 모두가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람이 다치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은 분명 큰 문제입니다.

건강하고 안전한 근로자가 질 좋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건강 없이 노동없다”의 구호가 단지 구호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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