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정성효 대림산업 안전품질실 기술안전팀
정성효
대림산업 기술안전팀 부장 (공학박사)

안전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편안하고 온전한 상태인 안전(安全)을 유지하는 것이 업무이고, 모든 사람이 삶의 매 순간이 안전하기를 기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전의 시점(始點)이 언제일까? 시간(時間)은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연계(連繫)하고 인간(人間)은 마음을 과거로 보내면 회한(悔恨)에 빠져들고, 미래로 보내면 불안(不安)해지곤 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지금(只今) 여기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지금에 대한 자각(自覺)을 절묘하게 표현해낸 영화가 있다. 지난 2월 국내에서 ‘작가미상(作家未詳)’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던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Never look away(직시, 直視)’이다.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두 의미가 어떻게 같은 영화의 제목으로 쓰일 수 있는지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두 제목이 모두 영화의 주제에 부합된다.

이 영화는 3시간의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연기와 스토리 전개가 훌륭한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던 시기이고, 두 체제를 오가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극명하게 체험하면서 세계적인 거장(巨匠)으로 성장한 한 미술가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마리안 이모’라는 제목의 그림은 주인공을 이모가 안고 있는 모습을 흐릿하게 그린 평범해 보이는 그림이다. 그렇지만 이 그림은 유럽인들의 집단지성(集團知性)에게 동독의 흑역사(黑歷史)를 상기하게 하는 작품으로 2006년 런던 경매장에서 약 46억 원에 낙찰되었던 세계적인 명작이다. 광적인 예술적 감각을 가졌던 마리안 이모가 남긴 ‘지금 이 순간의 진실된 아름다움을 직시하라(Never look away)’는 말이 주인공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여 독특한 그림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사진을 투영기(投影器)로 캔버스에 투사하여 그대로 윤곽을 그린 다음 윤곽선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카메라의 조리개가 열리는 순간과 필름에 상이 맺히는 순간의 시간적 간극(間隙) 때문에 사진은 언제나 실물과 다른 모습이 되고,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개인적 체험이 다르기 때문에 제각각 다른 느낌으로 보인다’는 관점에서 비롯된 독창적 기법이다. 작가의 느낌을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려고 사진을 흐릿한 윤곽으로 그려서 시공간이 중첩(重疊)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중의(重義)적인 단어와 같은 중의적인 형태의 그림으로 관객의 체험과 인식(認識)의 범주에 따라 작품에 대한 자유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파격적인 그림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 사람들이 작가의 작품에 호응하면서 전시회와 기자회견이 열렸고, 한 기자가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의 소재가 된 사진들의 내력에 대해 물었다. 그림들이 과연 어떤 파란만장한 사연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질문에 대해 ‘그 그림들은 자신의 개인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로 작품의 느낌을 제한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관객들이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허용한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서사(敍事)로 작품이 제한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작가미상’이라는 제목이 쓰였고, ‘지금 여기’의 의미로 ‘Never look away(직시, 直視)’라는 제목이 쓰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 실제로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인식은 각자의 체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영화 ‘작가미상’의 내용이다.

‘안전사고(安全事故)’는 ‘고(故) 안전사(安全事)’에서 옛날과 없음을 의미하는 ‘고(故)’ 글자를 도치시켜 만든 단어로 편안하고 온전한 상태가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불편하고 부족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편안하고 온전한 상태로 유지하려는 일련의 노력이 ‘안전관리(安全管理)’이다.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이 추구하는 안전의 시점(始點)은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이다.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곳을 편안하고 온전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안전관리의 본질이다. 지나간 과오를 탓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안전은 언제나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실제 상황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지나간 과오를 바로잡고, 미래의 위험까지 제거할 수 있다. 명심할 것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안전이라는 것이다. 개개인의 경험과 학습을 통해 형성된 안목으로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한다. 안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는 학습과 단련으로 역량을 키워가야 하는 이유이다.

유능한 심마니는 매 순간 자기 발밑을 유심히 살펴서 숲 전체를 본다. 안전의 시점(始點)은 바로 ‘지금 여기’이다. 지금 이곳, 이 순간에서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변화한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