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의 업무상 재해 보상책임 보충하는 것
1·2심에서는 패소, 일자리 대물림 우려

대법원은 산재사망 노동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단체협약 조항을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산재사망 노동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단체협약 조항을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노동조합 조합원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자녀를 특별채용할 수 있게 한 단체협약은 사회 공정성에 반하는 조약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지난달 2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씨의 유족들이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1985년부터 2008년까지 기아차와 현대차에서 일을 하던 중 화학물질인 벤젠에 노출돼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 이에 A씨의 유족들은 1억600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단체협약 규정에 따라 조합원인 A씨의 자녀를 채용해달라며 소송을 청구했다. 해당 규정은 노조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할 경우 직계가족 1명을 특별채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1심과 2심은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했지만 특별채용에 관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의 판단은 달랐다. 산재 사망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단체협약 조항을 무효로 볼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은 “해당 조항에서 채용 대상을 결격 사유가 없는 노동자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채용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는다”라며 “기아차 등도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이 같은 단체협약에 합의했으며 이미 여러 차례 산재 유족을 채용해왔다”고 밝혔다.
또한 “기아차와 현대차의 채용규모는 큰 반면, 해당 조항으로 특별채용되는 유족은 적다는 점에서 다른 구직 희망자들의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현대·기아차에서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산재 사망 유족으로 특별채용된 노동자는 16명으로 알려졌다.

대법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사용자가 부담할 업무상 재해 보상의 책임을 보충하는 것으로 유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위 조항이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해 무효하다고 본 원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이기택, 민유숙 대법관은 산재 유족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구직 희망자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 구직 희망자들은 능력이나 자격을 갖추면 채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기아차 등은 공정한 방식으로 채용 절차를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해당 조항은 이 같은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며 직계가족이 없는 노동자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공평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1심과 2심은 이 사건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채용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다른 구직자의 기회를 침해해 민법 103조가 정하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헌법상 협약 자치의 원칙을 벗어나는 조항으로 무효라고 봤다.
먼저 1심은 “청년실업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한 상황에서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단체협약을 통해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귀족 노동자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면서 “사용자 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생계보상은 금전으로 이뤄지는 것이 원칙에 부합한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2심도 “이 사건 단체협약은 노동자의 능력적 측면에서 어떤 요건도 요구하지 않은 채 곧바로 채용의무를 부과해 과도한 혜택을 부여한다”며 “재능과 노력 이외의 것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은 사회구성원의 충분한 합의 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요건 설정을 통해 예외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1심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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