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상의 지침의 ‘비정상의 정상화’
기술상의 지침의 ‘비정상의 정상화’
  • 승인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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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제13조(종전 산업안전보건법 제27조)에 의하면, 고용노동부장관은 기술 또는 작업환경에 관한 표준을 정하여 사업주에게 지도·권고할 수 있고, 이 표준(종전 기술상의 지침)을 정할 때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해당 분야별로 표준제정위원회(종전 기술제정위원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다. 그리고 표준(기준)제정위원회는 그 구성.운영이 안전보건공단에 위탁되어 있다.

본 조문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사업장의 업종, 규모, 작업양태 등이 천차만별임에도 불구하고, 법령(법률, 대통령령, 부령)은 그것이 본래 가지는 제약상 상당한 정도 획일적·일반적일 수밖에 없어 개별 사업장에 적용하는 경우에는 결코 친절하고 상세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면이 많고, 이 때문에 법령만으로는 산업재해를 감소시키는 데 많은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하여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시에 규정된 것이다.

산업재해의 감소를 위한 정책을 유효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법정사항을 보다 구체화하고 많은 현장에 바로 적용시킬 수 있는 방법을 확립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은 본래 사업장이 강구하여야 하지만 실제적인 문제로서 중소기업 등에서는 개별 사업장의 능력을 넘는 것이기 때문에, 법령이 취지로 삼고 있는 바를 보다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책으로서 지침, 가이드 등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본 조문에서 말하는 표준(기준)제정위원회가 구성은 되어 있으나, 본 위원회에서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안전보건공단 가이드(KOSHA GUIDE)를 제·개정하는 엉뚱한 일을 중심으로 수행하고 있고, 본 조문에서 말하는 고용노동부의 고시(告示) 형태로 기술상의 표준(지침)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활동은 전혀 수행하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기술상의 표준(지침) 제·개정의 개점휴업 상태가 고착화되어 있다. KOSHA GUIDE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고 안전보건공단에서 자체적으로 제정·운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운영은 본 조문의 제정취지에 전혀 맞지 않은 것으로서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모두의 명백한 책임방기라 할 수 있다. 표준(기준)제정위원회는 기술상의 표준(고시) 초안을 제정하라고 구성된 것이지 KOSHA GUIDE를 제정하라고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모두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지도·권고(지침·표준)와 관련된 규정의 제·개정활동의 부재는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법의 실질적인 이행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선현장에서 지방고용노동관서를 오로지 법위반을 적발하여 처벌하는 기관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게 하는 또 하나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한 나라의 산업안전보건수준을 결코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는 상식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수준을 선진화하고 이 상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부터 산재예방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여야 한다. 이런 노력 중 가장 초보적인 것이 기술·환경변화에 맞추어 기술상의 표준(지침)의 제·개정을 활발하고 내실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고용노동부는 많은 것을 법령이나 행정규칙(고시 등)에 규정하지 않고 법적 근거 없는 자체지침이나 KOSHA GUIDE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경향이 지나치다. 일정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행정규칙[기술상의 표준(지침)]의 형식을 취하는 정도(正道)를 걷지 않고 내용을 자의적으로 정하기 쉬운 법적 근거 없는 지침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상(deviance)이 정상화되어 있는 형국이다. 기술상의 표준(지침)의 제·개정에 대한 정상화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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