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생소한 전염병으로 인해, 시골 촌로도 낯선 영어를 읊조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걸 발전했다고 해야 하는 건지, 어지러워졌다고 해야 하는 건지 도대체 가늠할 길이 없다. 사람으로 붐비던 명동에 인적이 끊기고, 학생들 웃음소리 가득하던 교정에 바람만 가득하니, 같은 시대 다른 현실을 보아야 하는 타임머신 영화 속에 들어 앉은 기분이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에서도 정신없이 바쁜 분들이 있으니, 이름하여 로켓 배송, 총알 서비스 배달 기사님들. 외국 어디를 다녀 봐도 우리나라 이 분들만큼 열심히 뛰어다니는 분들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역시 자나깨나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다운 문화! 한편에서는 이런 문화 덕에 만만치 않은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우등생이라는 평점을 받는 데 기여했다지만, 과연 이게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일까?

몇 년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보았던 TV 프로그램 한 토막이 떠올라 뒤통수가 머쓱하기 때문이다. 그 방송의 내용은 며칠 전 유튜브에 올려진 한 동영상을 소재로 한 특별방송이었는데, 문제의 동영상은 야식 햄버거를 배달하러 달려가는 배달부를, 배달부인 동료가 나란히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가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히히덕거리는 모습을 약 5분 남짓 찍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일본 사회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벌집을 쑤셔 놓은 것같이 여론이 들고 일어나, 공중파 방송이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해당 방송에는 교통안전전문가가 나와서 약 1시간 가까이, 왜 문제가 아닐 수 없는지 친절하게 일반 시청자들에게 해설을 곁들여 주었는데, 그것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첫째, 오토바이 운전자는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했다. 동영상 중간에 네거리에서 정지신호가 나왔는데, 비록 밤이 깊어 차량통행이 적기는 했지만 오토바이를 몰던 젊은 청년은 소리내어 웃으면서 그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였다. 이건 명백한 도로교통법 위반이라고 지적하였다.

둘째,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옆에서 따라가면서 찍으려면 적어도 두 차로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텐데 아무리 밤이라 하더라도 이것 역시 도로교통법 위반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륜차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1차로로 주행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었다.

셋째,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는 동료를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은 손이 몇 개이었느냐는 것이었다. 적어도 한 손은 휴대폰에 가 있어야 했을 텐데, 그렇다면 본인의 오토바이 운전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

넷째, 촬영된 동영상에 포착된 도로 옆 가드레일이 지나가는 속도로 볼 때, 배달 오토바이는 분명히 과속 질주였다고 지적하였다. 캄캄한 밤중에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만으로도, 휙휙 날듯이 스쳐 지나가는 가드레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오토바이의 과속을 가늠하기에는 어렵지 않다고, 전문가는 추정속도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오, 과연 전문가!

결과적으로, 어떻게 이런 배달부를 고용하고 있는가, 도대체 이런 기업은 직원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가, 만약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가 하고 사회적으로 크게 화제가 되어, 결국 며칠 후 해당 기업의 임원이 나와 TV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과 관리를 강화하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였다. 이 기업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다국적 기업인데, 그런 대기업 임원이 한낱 햄버거 배달부의 치기어린 오토바이 과속운전으로 TV에 나와서 사과 말씀에 고개를 숙이기까지 하는 것에 필자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방영된다면 과연 해당 기업 임원이 머리를 숙일까? 아니 그보다, 우리나라 TV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올려질 수 있을까? 그 이전에, 그런 동영상이 유튜브에 오르면, 우리 사회의 반응은 어떨까?

작년말 이후 총알배송으로 인한 오토바이 사고가 15%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 개인용 이동수단에 머지않아 자율차, 게다가 드론까지 가세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다음 번(아무쪼록 그런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는 질병이 문제가 아니라, 땅과 하늘 어느 곳에서든 총알배송은커녕 여기저기서 부딪고 떨어지고 부서지는 소리만 가득하지 않을까. 지금이야 세상에서 한국이 방역 모범국이라 한다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오면 그때 우리 사회를 세계는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빠르게 빠르게’, ‘빨리 빨리’를 좇아 진단용 퀵 서비스 키트(Quick Service Kit),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등을 좋아하던 한국인들이 눈부신 속도로 주저앉았다고 손가락질하지는 않을지.

이건 한국인 안전의식의 문제요, 안전문화수준의 잣대인 동시에, 자존심의 문제이다. 속도전(?)을 중시하는 한국인 문화가 정보화시대를 선도하는 중요한 특성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디지털 첨단속도를 자랑하고 개발하기에 앞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우리의 구식 아날로그 문화인 과속 문제, 이것만큼은 제대로 해결하고 지나가야 하는 건 아닌지. 오늘밤에도 어두워진 거리를 오토바이들이 질주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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