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물질 노출 가능성…6년여 만에 승소 판결

반도체 관련 부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혈액암에 걸려 숨진 노동자가 사망 이후 6년여 만에 산업재해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9일 혈액암으로 숨진 A씨(사망 당시 만52세)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산재 불승인 처분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승인하면 A씨 유족은 앞서 청구한 유족 급여와 장의비 등을 지급받을 수 있다. 공단이 항소할 경우 상급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2011년 3월부터 반도체 부품업체에서 일한 A씨는 2014년 8월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이후 곧바로 수술을 받았으나 보름 만에 사망했다. A씨는 평소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았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었다.

A씨 유족은 이듬해인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A씨가 담당한 ‘펀칭’ 공정이 화학물질을 취급하지 않았고, 인근 공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됐더라도 기간이 짧고 역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산재 승인을 거부했다.

이에 A씨 유족은 2018년 7월 공단의 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A씨 유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A씨가 사망한 지 6년 만에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법원은 A씨가 담당한 펀칭 공정 전후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펀칭 공정은 이전 공정에서 만들어진 제품에 구멍을 뚫는 작업이어서 이전 공정에서 나온 유해물질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데다 공기를 재순환하는 해당 작업장 특성상 다른 공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이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에서는 A씨의 혈액암과 유해물질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며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다”라며 “피해자가 입증하기 거의 불가능한 기준이 적용되면 많은 이들이 산재 보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산재보험 도입 취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며 “공단은 산재 판단 과정에 있어 과학적 인과 관계가 아니라 법적, 규범적 인과 관계를 원칙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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