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저승 가서라도 꼭 그 은혜 갚겠습니다. △△△엄마 아빠, ㅇㅇ슈퍼 누님, □□□호 사모님 정말 그 은혜 갚겠습니다. 꼭 밝혀주세요 이 죄를. 경비가 억울한 일 안 당하도록 제발 도와주세요. 힘없는 경비 때리는 사람들 꼭 강력히 처벌해 주세요.”

입주민의 극심한 폭행과 폭언 등 이른바 ‘갑질’에 시달리던 아파트 경비원 故 최희석씨는 세상을 등지기 전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

최씨는 2018년 8월부터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홀로 두 딸을 키워온 최씨는 성실함과 친절함이 장점이었다. 이른 아침 입주민들의 출근길을 응원하기 위해 늘 웃음으로 인사를 했고, 가족처럼 친근하게 대했다. 아파트 내부를 구석구석 청소함에도 이것도 모자란다며 아파트 외부 청소까지 손수 나서서 할 정도였다.

그랬던 최씨에게 비극이 시작됐다. 이중 주차된 차량을 이동시키는 문제로 한 입주민과 갈등이 생기면서부터다. 이 아파트는 평소 주차 공간 부족으로 이중 주차가 일상이었다. 혼잡한 차량을 밀며 정리하는 일은 최씨가 으레 해온 업무였다. 하지만 자기 차량을 손댔다며 화가 난 입주민의 괴롭힘과 가혹행위는 그칠 줄 몰랐다. 인신공격과 협박은 기본이었고, 폭력의 수위는 코뼈가 골절될 정도였다. 생지옥과 같았던 날들은 견디다 못한 최씨가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나서야 마침내 끝이 났다.

지난 2014년에도 최씨의 경우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서울시 압구정에 소재한 모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이모씨는 입주민의 비인격적인 대우 등 각종 갑질에 시달리다 분신을 시도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결국 숨을 거뒀다.

이처럼 경비원에 대한 주민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이들의 계약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경비원들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와 위탁계약을 맺은 업체에 고용돼 일한다. 언제든 내쫓길 수 있기에 이른바 ‘갑’인 입주민 앞에서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홀로 묵묵히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됐다.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경비원은 각종 잡일부터 시작해 주민 응대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감정노동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경비원들의 계약구조 상 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입주민들이 사업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서울지방경찰청은 아파트, 대형건물 등에 대한 ‘갑질행위 특별신고기간’을 운영한다. 죄종에 관계없이 피해신고를 접수하고 경찰서 강력팀에서 사건을 전담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러한 예방활동도 잠시 반짝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금방 사라질까 우려스럽다. 때문에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입주민들의 인식 개선이다. 경비원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가족의 소중한 구성원이다. 아파트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이웃이기도 하다. 이들을 주민 응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가 아니라 아파트를 위해 봉사하는 이웃으로 볼 때 비로소 입주민 갑질은 근절될 수 있다.

일터에서 유해.위험기계기구만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짧은 세치 혀로도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무참하게 난도질 할 수 있음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상처도 산업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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