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우한 폐렴인지, 코로나19인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감염병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전파되는지도 모른다니 일반인들의 불안감은 물론이고, 마스크 매점매석에, 관계분야 기업들의 휴업과 조업정지까지. 관련분야 과학자와 전문가들에게도 갑자기 엄청난 과제가 한꺼번에 날아온 기분일 것이다. 가히, 울리히 벡(Ulrich Beck)이라는 선각자가 지적한 대로 위험여부가 사회조직 의사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놓이는 위험사회(Risk Society)를 경험하게 되는가 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불안을 느끼고, 희생자가 많지 않기를 기대하며, 피해를 피하려고 나름대로 묘안을 쥐어 짜내고 있는 이런 상황에, 엉뚱한 뉴스를 듣고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이런 판국에 사회 한 구석에서는 전염병을 퍼뜨려 세계를 정복(?)하는 게임이 스마트폰에서 유행되고 있다니! 하물며, 남들 놀라게 하는 재미에 우한 폐렴이라고 지하철에서 소리 지르고, 뛰어 다니는 사람까지 있다 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해당 게임은 영국의 게임제작자가 개발해서 2012년 출시한 것이라고 하는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병원체가 되어 지구에서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표라고 한다. 게다가 흥미로운 것은 이 게임이 2012년 시뮬레이션 부문의 상까지 수여했고, 이미 1,000만 명 이상이나 다운받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과학잡지의 기사에 따르면, 박테리아, 바이러스, 균류, 원생동물 등을 통해 인류를 전멸시킬 병원체를 선택하여 난이도를 정한 후 발생지역, 기후, 전염매개체 등까지 선택하여 게임을 시작하면 이후 인간과 야생동물과의 전염성, 잠복기간의 길이, 감염경로가 멸종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어려운 의학용어까지 친숙해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이 게임을 통해 손씻기가 감염병 예방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울 수 있다니, 말하자면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시뮬레이션, 즉 모의실험은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해 온 연구 분야이다.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사안에 대하여 규모를 축소해서 시행해 본다든지, 영향을 주리라 예상되는 변수를 바꾸어 그 결과를 예측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하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매력적인 연구 방법의 하나이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축소모형을 이용하는 아날로그 시뮬레이션 기술이, 컴퓨터가 개발된 이후에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되어 왔는데, 이미 그런 기술은 인간이 달에 착륙하고 우주를 탐험하는 데 널리 활용되어 크게 효력을 발휘해 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그런 기술이 시스템 다이나믹스(System Dynamics)라는 분야에서 감염병 분야의 게임에 이르기까지 일반화, 대중화되고 있다니 앞으로 빅데이터 기술까지 추가된다면 참으로 대단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이 기술을 안전분야에 활용한다면 어떨까. 다시 말해 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고를 일으킬 수 있을까. 어디를 어떤 순서로 건드리면 사고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범죄 영화로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경찰의 눈을 피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필자는 종종 사고를 예방하려면 어떤 불안전행동을 예방해야 하는지 질문을 받곤 한다. (인간의 행동이란 다종다양해서, 더욱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서 예상하기 어렵다는 푸념과 함께) 그 때마다 필자는 한 가지 요령을 알려 드린 바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당신이 사고를 저지른다면 어떻게, 어떤 순서로, 무슨 짓(?)을 할 것인가 반문해 보시라고 말이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해 본 바 있지 않으신지? 부모님의 눈을 피해, 선생님 모르게, 뭔가 저지르는 방법을 모색하려 했던 거! 그렇다. 그게 시뮬레이션이다. 세상의 모든 안전관리자가 이 원리만 터득하고 있다면 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자연재해라 하더라도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테고. 원래 상상력이 풍부한 것이 인간 아닌가.

그러니, 여러분도 여러분의 직장에서, 여러분의 환경에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어떻게 하면 사고를 저.지.를. 수. 있는지! 그것이 이해되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고, 그것이 보이면 사고를 회피할 수도 있다. 그 능력이 위험예지능력이고, 그 능력이 사고회피능력이기 때문이다.

보안 분야에서는 이런 개념이 이미 확실하게 자리잡은 모양이다. 최근 범죄영화를 보면 해킹하는 장면도 낯설지 않고, 해커들을 모아서 해킹을 예방하게 한다든지, 범죄자들을 모아서 범죄를 예방하게 하는 데 활용한다든지, 심지어 형무소 설계자가 직접 탈옥을 해 보는 영화까지 등장하였다. 그렇지, 그렇게 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많은 사람들의 인명이 오락가락하고, 인류를 멸종(!)시키는 게임이라니. 애당초 과학이라는 것이 순수한 의미에서의 연구와 실패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라지만, 아무리 재미가 있다고 해도 이런 부작용이 있는 게임은 좀, 포장이라도 잘 해서 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현자가 현대 사회를 보고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짓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 재미는 있지만 의미는 없는 활동 ... 게임
- 재미는 없지만 의미는 있는 활동 ... 일(work)
-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일 ... 여행.

필자도 경험에 의거,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해 준다. 자, 이제 이 어수선한 사회를 잊으려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야 할 판인데, 그게 어디 쉽겠나. 당장 마스크도, 세정제도 제대로 손에 넣을 수 없는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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