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전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도급인에 대한 의무가 강화된 것 같은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범자인 우리에게 구체적인 행동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무책임한 것 같습니다”, “정부기관 자신들은 도급인으로서의 의무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우리한테만 윽박지르고 있는 것은 너무 불공정한 것 아닙니까”, “도급인의 의무를 준수하기 위한 여건은 마련해 주지 않으면서 처벌하는 데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전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본격 시행됐지만 도급인에 해당하는 기업들, 그것도 준법의지가 있는 기업들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는 아우성들이다. 문제는 정부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지 않고 해결의지도 없다는 점이다. 산업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에 해당하는 도급규제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 제4항 및 제39조 제2항에서는 안전조치와 보건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수급인(하수급인을 포함한다)과 구별되는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항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즉, 도급인과 수급인(하수급인을 포함한다) 간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령’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만을 의미하는지, ‘시행규칙’도 포함하는지에 대해서는 준법정신을 가진 사회의 평균적 일반인조차 이해·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전부 개정법에 따르면, 도급인이 수급인(하수급인을 포함한다)과 공동으로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지, 도급인 단독으로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수급인(하수급인을 포함한다)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하여 지도감독(관리)을 해야 하는지 등 도급인이 이행해야 할 의무내용과 의무범위가 매우 불명확하다. 다시 말해서, 전부 개정법은 도급인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의무를,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결국 수범자의 입장에서는 전문가 등의 조언을 구하여도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당해 법 규정은 헌법상의 원칙인 명확성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헌법재판소 2005.3.31, 선고 2003헌바12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전부 개정법 제38조 제4항 및 제39조 제2항의 규정대로라면 법령의 해석·집행과정에서 도급인은 수급인 및 하수급인의 의무에 해당하는 모든 의무(수급인 및 하수급인의 의무와 동일한 조치)를 이행해야 하는 것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같은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도급인과 수급인, 하수급인은 주체가 다른 만큼 공동으로 해야 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기본적으로 그 역할이 동일할 수는 없는데도 도급인에게 수급인(하수급인)과 동일한 조치를 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하다. 이렇게 해석된다면 이는 헌법상의 원칙인 자기책임의 원칙에도 위반될 소지가 크다. 

특히, ‘도급인의 사업장’에는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경우로서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까지를 포함하는바(법 제10조 제2항 참조), 이러한 사업장에서 도급인, 수급인(하수급인) 중 누가 어떤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여야 하는지를 구분하지 않으면, 도급인이 수급인, 하수급인이 이행해야 할 안전보건조치를 직접 모두 이행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불합리와 비현실성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정작 집중해야 할 도급인으로서의 의무 이행에 큰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도급인과 수급인(하수급인) 간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는 규정을 두지 않으면, 도급인이 수급인의 의무와 동일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이에 따라 도급인 어느 누구도 이를 온전히 이행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모든 수범자(도급인)가 범법자가 되고 도급규제의 규범성이 상실되는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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