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얼마 전 검진을 하는데 살짝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을 받으러온 분들 중에 건강상태가 개선된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야간작업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이란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서 사업주가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해 실시하는 검진으로, 야간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발병위험이 높은 뇌심혈관질환, 수면장애, 위궤양, 유방암 등의 예방을 위한 검사와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다.

당시 필자의 기분을 좋게 한 수검자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40대 중반의 남성이었으며, 4조 2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일명 주야비휴. 즉 하루는 주간, 다음날은 야간근무 후 비번, 이어서 휴무일, 이런 식으로 순환하면서 교대근무를 하는 것이다. 올해 설문지에 체크한 내용을 보니 불면증상이나 소화기 증상은 거의 없었다. 이어 작년 의무기록을 보니 혈관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좀 높았지만 약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경우 장기간의 야간작업이 뇌졸중과 심근경색의 위험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런 질환의 위험요인인 이상지질혈증에 대하여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내용과 함께 생활습관관리와 체중조절을 권고한다. 

작년 검진이후에 어떻게 건강관리를 했냐고 물어보았더니 살을 좀 뺐다고 한다. 다시 작년 기록을 보니 74Kg에서 67Kg으로 몸무게가 줄었다. 기대감에 올해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해보니 완전 정상이 되어 있었다. 이럴 때 근로자건강진단을 하는 의사로서 작은 보람을 느낀다.이렇게 흐뭇한 일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반대의 경우가 더 빈번하다. 이와 관련해 기억나는 수검자가 있어 지난 일기를 찾아서 다시 읽어보았다. 2년 전 방송국 송출업무를 하는 50대 후반 남자가 검진 중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우리 간호사에게 반말을 섞어가며 “이 검진 마음에 안 든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진찰실까지 들렸다.


그 분이 들어왔을 때 조심스럽게 “어떤 업무를 하시나요?”하고 물으니, 싸늘한 시선과 함께 “얘기하면 알아요?”라는 차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애써 담담하게 “제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예요. 직장인의 건강문제를 진단하는 사람이니까. 좀 알아들어요.”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방송편집 및 송출업무를 한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그분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이 검진을 한다고 했을 때 사실 기대가 좀 있었다. 그런데 해마다 똑같은 설문지에 체크를 했음에도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검진결과를 받아본 적도 없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보통 검진결과는 검진기관에서 사업장 보건관리자에게 보내면, 보건관리자가 직접 당사자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분실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일을 막고자 우리 병원에서는 사업주가 의뢰한 건강진단도 근로자의 개인 주소지로 발송하며, 이때 주소를 이중 체크할 정도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 결과 반송률이 5%미만이다. 헌데 애석하게도 이분은 그동안 다른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고, 우리 병원에는 처음 왔다.

약간의 대화를 마친 후 설문지를 살펴봤다. 피로와 불면이 심각하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30년 야간근무에 10년 전부터 발생한 증상이라고 했다. 24시간 방송이 되면서 업무가 점점 늘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과거에는 야간근무를 해도 이렇게 노동강도가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식적인 휴게시간이 없는 것도 야간근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라고 했다. 다만, 곧 은퇴예정이라 근무일정의 조정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처방을 대신하여 수면위생교육 자료를 주면서 햇빛노출, 운동, 식사관리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병원 인근 방송국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을 한 지가 어느덧 6년째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불규칙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그 큰 회사들은 수 십 만 원짜리 종합검진을 직원들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야간작업 관련 건강문제를 가진 근로자에 대한 조치는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방송국마다 보건관리자를 선임하고 있지만 아마 그 분들도 업무가 과중하여 법적인 기본업무 수행도 버거울 것이라 짐작한다. 과로사회에서 야간작업 종사자의 건강관리는 개인의 헌신이나 개별 회사의 결단으로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는 2011년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연구의 책임자였고, 이 검진을 설계하는 연구에도 참여하였다. 그 때 함께 논의했던 사람들의 생각은 최소한 야간작업의 유해성을 알리고 야간작업과 관련된 건강문제를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야간작업 그 자체에 대한 조직적 개선이 필요하나 어려운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수준의 예방활동은 ‘지속되는 한’ 효과가 있다고 하니, 가끔 접하는 검진이후 건강상태의 개선 사례를 기운삼아,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 마음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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