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수 교수(중앙대 심리학과)
문광수 교수(중앙대 심리학과)

 

일반적으로 표지판, 포스터가 행동에 미치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짧다. 아무리 강력한 표어나, 포스터(매우 혐오적인)라도 효과가 길게 가진 않는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지만 효과가 짧은 이유는 습관화(habituation) 때문이다. 습관화가 동물이나 인간에게 긍정적인지 혹은 부정적인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없지만 습관화 진화론적 관점과 일치한다. 만약 인간이 반복되는 자극이나 유사한 자극에 일일이 인지적, 정서적인 에너지를 할애한다면 이것은 에너지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에 입사했을 때 처음 들리는 기계음이나 방송 소리, 경고음, 자동차나 지게차 소리에 매우 주의가 가고, 일을 집중해서 하는데 방해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자극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면 습관화가 일어나고 이러한 소리들은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배경음이 된다.

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생존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사소하거나 반복적인 자극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줄이고 새로운 그리고 중요한 자극에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그리고 표지판이나 표어에서 요구하는 행동을 했을 때 적절한 결과(consequence)가 주어지지 않으면 표지판이나 표어에 대한 습관화는 더 잘 일어난다. 우리가 과속금지라는 표어를 운전하다가 자주 보지만 과속을 하더라도 벌금이나, 벌점 등이 오지 않는다면, 규정 속도로 운전했을 때 운전자에게 어떤 이익이 오지 않는다면 이러한 표지판이나 표어에 더 이상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안전벨트이다. 미국에서 1980년대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도 차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안전벨트에 중요성에 대해 방송에서 아무리 광고를 해도 지켜지지 않았다. 주차장 바로 앞에 안전벨트를 매라는 표지판이 존재해도 금방 잊혀 진다. 지금은 어떤가? 거의 모든 운전자는 안전벨트를 맨다. 안전벨트 매지 않았으면 소리가 난다. 시끄러운 소음의 제거라는 결과가 바로 주어지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거의 다 매는 것이다. 지금 차에서 안전벨트 미착용 시 소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기능이지만, 오래 전 심리학적 연구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서 생긴 기능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안전 표지판에서 요청하는 행동을 했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줄 수 있다. 택시의 뒷 자석을 이용할 때도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론 거의 지키기가 쉽지 않다. 브라질 경우 택시 승객의 안전벨트 미착용률은 92%에 달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표지판에 제시된 행동을 했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제공하였다. 바로 무료 Wi-Fi였다. 각종 광고와 표지판에도 별 반응이 없던 승객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안전벨트를 매면 무료 와이파이가 연결된다’는 작은 안내문이었다. 관찰 결과 해당 택시에 탑승한 승객 약4,500명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되는 경고보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행동을 변화시킨 것이다(안전보건, 2017년 1월호).

국내의 경기도 시화공단의 한 공장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공단에서 수 차례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설계를 맡은 디자인 연구소는 대부분의 사고가 작업을 마친 뒤 밸브 등을 제대로 잠그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유독물질 배관 밸브를 완전히 잠글 경우 발광다이오드(LED) 불빛이 켜져 웃는 얼굴 모양이 나오도록 디자인했다. 잠금 상태의 확인이 더 쉬워졌고 결과가 즉각적으로 제공되니 안전행동을 훨씬 더 잘 준수하였다(안전보건, 2017년 1월호). 꼭 지켜야 하는 안전 행동의 경우 그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면 안전 표지판의 효과는 습관화를 넘어 더 극대화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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