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휴먼에러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물건을 망가뜨렸을 때 그것은 범죄가 됩니까? 이러한 질문을 주위로부터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무릇 형법학에서의 인간상과 휴먼에러를 다루는 안전심리학에서의 인간상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형법학에서는 나쁜 행위를 그 동기에 따라 다음과 같은 4가지로 구분한다.

① 확정적 고의: 부상을 입히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는 것 등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를 목적으로 하여 저질러진 행위
② 미필적 고의: 부상을 입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물건을 망가뜨려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 등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를 의욕(인용)하여 저지른 행위
③ 인식 있는 과실: 설마 부상을 입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거나 물건이 망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등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를 의욕(인용)하지는 않았지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결과발생을 회피하지 않은 행위 
④ 인식 없는 과실: 부상을 입히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는 것 등과 같은 것의 발생 가능성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행위

고의는 명백히 범죄이다. 재해라면 확정적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우이다. 과실은 경솔하다는 비난을 받을 만한 행위 또는 부주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를 가리킨다. 예컨대, 강풍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닥불을 피우다가 결과적으로 화재를 일으키는 것이 인식 있는 과실이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 모닥불을 피웠는데 돌풍이 불어 모닥불이 갑자기 높이 타올라 화재가 발생한 경우는 인식 없는 과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식 없는 과실도 재해 등의 결과를 발생시키면 업무상과실치사죄 등으로 범죄가 될 수 있지만,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형사처벌되지는 않는다.

불길이 타오른다는 인식은 없었다고는 하지만, 일단 화재라는 결과가 발생하면 모닥불의 위험을 생각했어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경우가 보통이고, 특히 결과가 중대하면 중대할수록 그 목소리는 커지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모범적인 인간상을 기대하고 있다. 그것으로부터 일탈하면 그 자는 좋지 않은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일반적이다. 옳고 그름은 떠나서 그것이 설령 인식 없는 과실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고 착각, 실수, 누락 등을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존재한다. 소위 ‘휴먼에러’라고 하는 것이다. 휴먼에러는 대체로 형법의 인식 없는 과실에 해당한다. 따라서 재해 등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면 휴먼에러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처벌되지 않지만, 결과가 발생하면 휴먼에러라 하더라도 처벌될 수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휴먼에러, 즉 의도하지 않게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는 이것을 발생시킨 사람을 비난하더라도 그것의 재발방지에 한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라고 하는 동물은 약한 존재이고 휴먼에러는 그 생래적 한계의 발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휴먼에러에 대해서는 의도하여 일으킨 위반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휴먼에러에 대해서는 선량하지만 약한 인간상을 전제로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것을 생각하는 접근방식이 필요하고, 위반에 대해서는 편하고 간단한 것을 선호하는 인간상을 전제로 하여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로 하여금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는 쪽을 택하도록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즉, 휴먼에러와 위반은 둘 다 불안전행동에 해당하지만 그 성격과 발생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지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