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효 대림산업 안전보건팀 부장
정성효 대림산업 안전보건팀 부장

 

지난해 국내 건설현장의 사망재해자 506명 중 약 275명이 추락으로 사망했다. 추락예방 안전시설물을 설치하고 안전모, 안전대를 올바르게 착용할 때 추락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현행 법령상 사업주는 개인보호구를 지급하고 근로자는 이를 착용해야 한다(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32조). 미지급 사업주에게는 징역이나 벌금을 부과하고, 지급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근로자 개인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해 강제하고 있다(산업안전보건법 25조, 67조). 그렇지만 규제를 통한 시행에는 한계가 있어 아직도 일선 현장에서는 개인보호구 착용 준수가 미흡한 실정이다.

여러가지 제도적 보완으로 개인보호구 지급은 점진적으로 정착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답답한 안전모를 착용하고 턱끈을 조이는 것은 여간한 인내심으로는 어려운 일이고, 걸리적거려서 불편한 그네식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작업하는 것 또한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면 단지 그런 불편함 때문에 개인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불편함도 하나의 이유이기는 하지만 더 근원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암벽을 타는 사람은 아무리 불편해도 보호구를 착용한다. 직관적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암벽 등반가는 보호구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장비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아무리 걸리적거려도 스스로 착용할 뿐만 아니라 보호장비를 수시로 점검하며 소중하게 다룬다. 근로자들이 개인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함부로 다루는 습관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유해위험에 대해 방심하고, 자기 물건이 아닌 것에 애정을 쏟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작업에 내재된 위험이 감각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사업주가 지급해주는 보호구이니 아껴서 다루지 않는 것이다. 하루만 출력해도 보호구가 무상으로 지급되는 상황에서 누구든 다른 사람의 땀이 배인 안전모, 안전화를 착용하는 것은 싫어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단기간 근무하고 현장을 떠난 근로자들의 멀쩡한 안전모나 안전화가 곳곳에서 무용지물로 낭비되고 있다. 이런 실태에서 현장에서는 제한된 재원으로 과도하게 구매되는 개인보호구의 구매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어 품질 또한 최소한의 안전인증 기준치만 충족하는 졸품이 제작, 공급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자발적인 개인보호구 착용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근로자들이 보호구가 매 순간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직관적 느낌을 바탕으로 보호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근로자 본인의 안전을 위한 일이다.

근로자들이 보호구의 효용성에 대한 직관적 느낌을 함양하도록 하기 위해 체험형 안전학교, VR 체험 등 오감을 활용하는 교육이 안전분야 각계에서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근로자가 보호구에 대한 애정을 갖고 관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유물에 애정을 쏟는 인간의 본성을 감안, 근로자 개인이 구매해 본인이 소유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먼저 가장 일반적인 개인보호구인 안전모, 보안경, 안전화, 각반 등을 개인 구매하여 착용하게 하고, 근로자가 추가로 부담하게 되는 구매 비용 이상을 환급해 주면 된다. 그간에 이 문제에 대해 연구했던 여러 연구자들이 논문을 통해서 여러 가지 환급 방법을 제시했지만 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형태는 ‘건설 근로자 퇴직공제부금’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판단된다. ‘건설 근로자 퇴직공제’는 일용직이 많고 한 사업장에서 고용이 지속되지 못하는 특성을 가진 건설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퇴직금을 마련해 준 법적 제도이다. 일용·임시직 건설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근로자가 1일 출력할 때마다 일정 금액의 퇴직공제부금을 건설공제회에 납부·적립해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한 누적 근무일수가 252일 이상되는 근로자는 ‘건설업 퇴직’ 시 그동안 적립된 금액을 받을 수 있다. 3억 원 미만의 공공공사, 공사금액 100억 원 미만의 민간공사로 현행법상 퇴직공제부금 가입의무가 없는 소규모 사업장은 지금의 퇴직공제부금 시스템을 활용하여 ‘개인보호구 공제부금’을 신설하여 근로자에게 환급해주는 시스템을 만들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공사 계약 시 직접 노무비에 일정 비율로 계상되어 사업주에게 지급되는 퇴직 공제부금 금액에 개인보호구 구매 금액을 추가 반영시켜 근로자에게 환급해 주는 것이다. 사업주에게 추가 반영되는 비용은 현행 안전관리비로 사용하고 있는 개인보호구 구매비용을 전용(轉用)하면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에게 추가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려는 근로자는 의무적으로 기본적인 개인보호구를 구매하도록 하고, 현장은 출력하는 근로자들이 개인보호구를 보관할 수 있는 탈의시설만 구비하도록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각자 자신의 기호에 맞춰 구매한 안전보호구를 잘 관리하여 오래 사용할수록 보호구 구입비용은 절약되고, 건설현장 근무 일수에 비례하여 보호구 구입 환급금액은 많아지니 이익이다. 과도한 구매와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한 망실로 낭비되는 물자가 줄어드니 사업주와 국가적 차원에서도 윈윈(win-win)인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개인보호구 착용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보호구 안전인증 기준을 대폭 높여 착용은 간편하고, 안전성은 향상된 최상급의 제품을 생산하고 그에 합당한 가격을 받아야 한다. 품질 향상을 위해 상승된 비용은 여러 단계에서 가치를 창출하며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결국 근로자에게 충분한 금액으로 환급되니, 국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면서 대한민국 안전보호구의 총체적인 수준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부가급부로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시켜 건설업계에 젊은 피를 수혈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개인보호구를 판매하고 전국에 개인보호구 대리점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할 것이다.

많은 실험과 사례에서 밝혀진 것처럼 안전 보호구의 착용은 근로자의 마음까지 안정시켜서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본질적인 안전관리 시너지 효과가 있다. 어떤 작업환경에서도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작업하는 것이 군인이 군복을 입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검토와 건설사와 근로자의 참여를 통한 국가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개인보호구의 지급 형태와 품질 성능을 개선하여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안전을 바로 세우게 되기 바란다.

‘안전이 바로 서야 건설이 바로 서고 안전이 바로 서야 국가가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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