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한동안 촛불과 대선으로 시끌벅적하더니, 이제는 말에 올라타느니, 타다가 떨어졌느니 하는 하마평으로 소란스럽다.

큰 일을 치른 후에 크고 작은 공에 따라 상을 주고 받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오랜만에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하는 큰 방향 이 바뀐 만큼 자리를 옮겨 앉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고, 또 설레는 모양이다.

원래 자리라고 하는 것은 고대 사회부터 남들보다 높은 지위의 상징이었다.

의자의 역사를 보면, 고대사회 부락의 추장이나 족장들이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나무 그루터기에 올라앉거나, 바위에 가죽을 덮고 그 위에 올라앉은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봉건제도 당시 국왕의 의자는 국가의 위엄을 상징한다고 믿어서 온갖 조각과 장식으로 가득 찼고, 금박을 입혀 휘황찬란하게 만들었었다.

물론, 아랫사람들은 서 있거나, 앉아 있다고는 해도 격이 낮은 의자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 지금도 의자는 신분의 상징이다. 평사원의 의자보다는 과장님의 의자가, 그리고 부장님 의 의자보다는 이사님의 의자가 더 크고, 더 높으며, 더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의자 는 어디까지나 의자. 인간공학적으로 보았 을 때 의자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앉는 데 있다. 인간의 허리뼈는 척추만곡이라고 하여, 앞뒤로 약간 휘어져 있다.

이 모양을 자연스레 유지시켜 주는 것이 중요한데, 바지를 입을 때 허리띠 높이보다 주먹 하나쯤 아래 부분 - 이 부분이 요추 서너 번째 마 디에 해당한다 - 을 자연스레 지탱해 주는 것이 좋은 의자이다.

의자의 모양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앉는 가도 중요하다. 우리 문화도 그렇지만 어느 나라에서건 ‘윗자리’라고 하는 게 있어서 어른이나 지위가 높은 분이 앉도록 배려하 고 있다. 그러나, 그 위치는 국가나 문화에 따라 다르다.

필자가 일본에서 무안함을 경험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날인가, 50대 일본인 교수가 당시 70대이던 저명한 일본인 원로교수와, 30대 이던 필자를 초청해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택시를 타게 되었 는데, 내가 가장 젊었으니, 문을 열고 잽싸 게 뒷자리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당시 내 생각으로는, 목적지를 모르니 내가 조수석에 앉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고, 통상 조수석 뒷자리가 가장 윗자리라고 알고 있었으니, 거동도 불편하신 원로교수님이 앉으시기 전에 내가 먼저 들어가야 나이 드신 원로교수님이 앉기 편하실 거라는 생각이 었다. 그러나 웬걸, 나를 초청한 교수는 내 뒷 덜미를 덥석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영문 을 모르고 끌려 나온 필자. 머쓱해 있는 내 앞으로 천천히, 오랜 노력 끝에 나이 든 원 로교수님이 차에 올랐다, 운전석 뒷자리로! 나는 소위 우리나라에서 ‘상석’으로 알려져 있는 조수석 뒷자리에 앉아야 했다. 목적지 로 가는 내내, 내 머릿속 의문은 끊이지 않 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나를 끌어냈지?’ ‘무슨 이유이지?’‘외국인이라고 우대해 준 건가?’ ‘아닌가? 그럼 왜?’ ‘어디가 윗자리이지?’ 의문은 그 날 밤, 돌아오는 길에 풀렸다. “임 교수는 안전공학과 교수잖아? 그럼 어디가 제일 안전한 자리인지 아실 텐데?” ‘아뿔싸. 이 나라는 우리나라와 문화가 다른 거를 잊었었구나.’ 일본인 교수의 설명은 이랬다. 일본에서는 어디건, 가장 안전한 자리가 ‘윗자리’ 라는 것이었다.

자동차에서나 건물에서나 가장 안전한 자리가 ‘윗자리’이다. 과연, 사업장 곳곳에 ‘안전제일’이라는 구호를 붙이고 있는 나라다웠다. 거듭되는 재난과 사고를 통하여 얻은 경험과 구호를,  평소 생활에 예외 없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 었다.

과거 미국 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 면, 운전석의 위험계수를 100이라 했을 때, 조수석은 101, 조수석 뒷자리는 74.2, 운전 석 뒷자리는 73.4라고 한다. 그러니, 타고 내리기 편한 자리가 ‘윗자리’가 아니라, 목 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생존가능 성이 조금이라고 높은 운전석 뒷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 즉 ‘윗자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었다.

알면서도, 짐짓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사회, 우리 사회에 비하여 일본은 철저하게 그 1% 남짓한 수치를 가슴속에 새겨 생활 속에 실천한다는 거! 안전공학과 교수로서 실로 머쓱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필자는 다른 사람보다 한두 걸음 뒤에서 일본인 눈치 보며 따라가는 생존전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 실제로 가장 안전한 자리는 뒷좌석 가운데로서 위험계수가 62라 고 하는데, 그건 안전벨트를 맬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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