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져 생긴 말이며, ‘높은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흔히 정부 고위 인사, 재벌가 등 사회 지도층이 부도덕한 행위를 하거나 주어진 의무 및 책임을 회피했을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식으로 쓰인다. 헌데 이 말이 최근 안전분야에서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회자되는 이유는 일부 대기업이나 원청사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행동 때문이다. 지난 1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표한 A건설업체의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해당 기업은 2015년 4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모 주상복합 신축공사를 하도급업체에 위탁하면서 원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산업재해·환경관리 관련 비용을 수급사업자 책임으로 하는 부당특약을 설정했다. 또 원사업자의 지시에 따른 재작업, 추가·보수작업 중 수급사업자의 책임이 없는 경우에도 수급사업자가 관련 비용과 책임을 부담하도록 했다.

최근 상생, 공생의 안전관리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원청이 하청의 안전활동을 지원해 주는 것이 요즘 산업현장의 분위기인데, A업체는 이런 시류를 역행한 것은 물론, 갑질을 넘어 부도덕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이에 공정위는 A업체에 시정명령과 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 사례에 며칠 앞서서는 유력 대기업들이 몰염치하고 비양심적인 행동을 일삼다가 대거 적발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환경부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은 유독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무허가로 제조·수입해 판매한 불법 유통업체 33곳의 이름을 공개했다.

앞서 환경부가 올해 2월 이들 업체 적발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었는데, 당시는 검찰의 공판청구 이전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검찰이 PHMG 불법 유통업체 대표와 실무자 32명를 일괄 불구속 기소함에 따라 명단이 공개됐다.

드러난 명단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G칼텍스, S케미칼, D케미칼 등 유명 대기업 3곳의 이름이 여기에 올라와 있었다. 이들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유독물질 수입신고를 하지 않거나, 유해화학물질 영업허가를 받지 않고 PHMG를 제조 판매하는 등 법망을 피해가다 적발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낮은 농도로 사용된 점을 감안하면 PHMG로 항균 처리된 섬유와의 피부 접촉으로 인한 인체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피해유무로 사건의 심각성을 가릴 문제가 아니다. 이들 대기업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도 불구하고 PHMG를 버젓이 불법 유통시킨 데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다. 이는 이들 기업들이 여전히 안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식이 없이 맹목적으로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국민들은 전후 반세기가 넘도록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대기업들의 성장과 발전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런데 이런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이 보은이 아닌 범법행위라니, 비록 일부 기업들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그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는 대기업에게 명예와 부를 준 국민에게 할 도리가 아니다.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 덕분에 그 자리에 올라섰다면 그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특히 국민의 건강 및 생명과 맞닿아 있는 안전분야에서는 더욱 큰 책임이 뒤따름을 잊어선 안 된다. 대기업이면 대기업답게, 원청이면 원청답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 리더가 솔선수범해야 안전문화가 산업현장 곳곳에 퍼져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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